전시안내

  • HOME
  • 전시안내
지난전시

최익규 네번째 개인전

전시기간 2010.12.01 ~ 12.06
전시장소 KOSAspace
작가명 최익규
URL -

최익규의 해체적 충동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 김복수
최근 작품의 경향들은 스펙타클한 사회를 반영하듯 하나의 예술작품을 해석하기에 다층적인 각도에서 작품을 읽어야 가능하며, 이미지에 이미지를 묻는 알레고리적 작업들로 인하여 풍부한 상상력의 언표를 요한다. 필자가 언급하고자하는 최익규의 작업들도 아마도 그러한 범주의 모나드라고 할 수 있다.
하얀색 천으로 만든 드로잉적 자유로움과 이미지의 반전들은 과연 그의 작업들은 어떻게 읽어야할까. 좀 난해한 듯 페스티쉬적이지만 단순히 조각적 형상 혹은 기호적 지점의 측면에서 벗어나 그의 작품에 기용된 배경과 전체적인 고리를 탐구하며 그의 작품 전체의 화두가 된 ‘몸과 성sexuality’의 최익규 식의 텍스트를 그의 삶과 접속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최익규의 최근 몇 년간의 작업 행보를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자-연 혹은 몸 담론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인한 ‘성sexuality’이라는 근본적 감각에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
이전 자신의 예술을 포르노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선보였던 제프 쿤스 이후 현대예술에서 성sexuality 담론은 어쩌면 현대미술의 주요한 코드라고 할 수 있으며, 신체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영토화되는 몸 담론의 영역에서 성sexuality에 대한 표현은 자연스러운 사태이며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이러한 맥락에서 최익규의 작업들도 개념적 작업 이후 욕망적 몸이라는 자연스러운 접속의 지점을 탄생시켰으며 그가 생태(生態)하고자 하는 영토로 나아가고 있다.

먼저 그의 작업들은 초기의 조각적 물성 작업에서 비롯된 예술에 대한 반성적이거나 반기성적인 개념적 출발로 이어졌으며 이후 비기념비적 연출과 문학적 문맥에 몰입하는 탈조각적 환경에 대한 관심과 제작들을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근간을 이루는 작업들은 몸이라는 ‘욕망적 기계’를 해체하여 결코 동일화 될 수 없는 원초적 질료 혹은 개체를 생산한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 그는 천과 바느질을 이용한 드로잉적 설치작업들로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캔버스로 만든 천속에 왕겨로 속을 가득 채운 동물 형상들과 또는 소금?을 하얗게 뿌린 바닥에 의성어로 쓰인 텍스트작업, 거대한 성기 모양의 조각들로서 뭔가 완성되지 않은 우발적인 메타포를 포함하고 있으며 자신을 보충하고 있는 성적 대리물로 상징됨을 볼 수 있다.

최익규는 작업들에 기용하고 있는 천과 바느질은 그간 여성작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작업들과 변별력을 갖는다. 여성으로서 바느질로 꾀매는 행위는 자신의 상처의 치유와 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서 작용하였다. 특히 루이스 부르주아의 바느질 조각작품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최익규의 바느질의 행위는 제도화된 질서를 거부하거나 혹은 가두고 봉해버리는 제스추어로 의미될 수 있으며, 무엇을 남기는 ‘기억의 창고’보다는 관람자들에게 ‘어떤 것을 경험할 것이가’를 주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그의 직접적 표상이 아닌 우의에 기술하는 것이어서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바느질 작업의 수행 과정은 완결된 견고함에서 벗어난 심리적인 우연이 실행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이 바라보는 해체된 신체의 변용적 감각을 뒤섞어 어떤 성적욕망의 이미지로 해석되어 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성sexuality이라는 질료와 규모, 서사와 행위 간의 유희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의 작품의 문맥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해부학적 뼈대를 제거한 극도의 단순성, 즉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익규의 가장 단순하게 즐기는 요소 중 폭넓은 드로잉들은 그리기 차원이 아닌 알레고리적 차원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익규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미완적인 강렬함의 설치 드로잉들은 일종의 놀이의 장으로서 표출하고 있으며 욕망을 놀이로 희석시킨 ‘성의 유희’라는 에너지로 묶여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 또 하나의 풍경들은 천장에 매달려 고개를 기울인 조각들은 마을 어귀의 성황당의 물신적인 요소들의 상징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순간적이거나 덧없음을 영적인 이미지로 꾀하고 있는 기이한 풍경이다. 이는 순수성에 사로잡혀 있던 물화物化된 매체가 아닌 그간 무시되었던 확장된 매체들의 부활이며 어떤 층위를 드러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즉 최익규는 거대한 부드러운 남근을 통해 즉물적 보기의 방식이 아닌 특정한 관념 빼기, 타자-되기를 제시하거나 혹은 열린 신체를 위한 상상공간을 확보하기위한 그의 역설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에 전시장을 가득 메운 최익규의 남근-되기는 그가 생성하고 해체하고자하는 날것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최익규는 과거 자신의 작업에서 보여줬던 개념적의 지리멸렬한 예술적 태도에서의 경험을 몸의 코드로 개시하고 있으며 다른 위치로의 층위를 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거대한 예술적 신화를 벗겨내기라고 진술하듯 몸이라는 욕망기계를 통한 기관 없는 신체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닐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