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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수 조각개인전

전시기간 2010.12.15 ~ 12.21
전시장소 KOSAspace
작가명 윤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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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이면을 드러내는 빛

박 종 석 . 미술평론가

1991년, 2002년 그리고 2010년.

작가 윤덕수는 조형작품으로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글로 대답하고 글로 질문을 해야 한다. 고흐와 고갱이 같은 언어 매체인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각자의 지평을 불편한 간섭으로 간주함으로써 대화를 멈추었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 매체를 사용해야 한다. 이 어려운 대화가 멈추지 않고 지속되려면 서로의 다름에 대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용인해야 하며, 각자가 내놓은 결과물이 보여주는 겉모습에 쉽게 붙잡혀서는 안 된다는 점이 시작을 더욱 어렵게 한다.

따뜻한 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생산적인 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질문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직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질문을 종결지으려 하지 않고 새로운 질문을 유발시켜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에 생명력을 더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작가의 첫 작품은 1991년 충청북도 미술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이 후로 지금까지 작가의 전체 작업 이력을 드러내는 모든 작품을 이 글 직전에 처음 보았으니 대화의 시작이 난감하다. 첫 질문으로 삼기에는 난감한, 그런 의미에서 당장은 건너뛰는 1991년이다.

내가 첫 질문의 단초로 삼고 싶은 것은 2001년 그리고 2010년이다. 윤덕수 작가의 전체 작업 일지를 넘기면서 겉보기에는 가장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작업이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작품이 만들어진 해이다. 나와 작가 사이에 작품을 두고 하는 대화가 아니라,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작품들 사이에서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관계로 보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2001년과 2010에 이루어진 작품 사이에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작업 2010이 무엇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할 때, 그것은 작업 2001로부터 시작한 것,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 짓자면 2002년 작업이다. 내 눈에 비친 겉보기에는 일단 그렇다. 또 다른 겉보기에서라면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이루어진 거북이 껍질이 연속된 것이다. 소재나 형태면에서 볼 때, 작업 2001과 2002 사이에 이루어진 것들과 그 나머지 시간 속에 이루어진 작업 사이에는 쉽게 일관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윤덕수 작가에게 형태와 소재에 관해서 대답과 질문을 잠시 묻어 두고자 한다. 물리적 공간을 잠시나마 견고하게 점유하는 형태와 부피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빛이다.

빛의 문제가, 만일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조각 세계(sculpture world)에서 얼마나 심도 있게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조각적 대화(sculptural dialogue)에 등장했을까? 감정의 떨림을 손끝으로 연주해냈던 감각주의자 로댕의 그늘에서 나와 부랑쿠시가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자연의 궁극 형태를 찾아 공간의 새로 날려 보낸 이후로 현대 조각은 지배적 방향성 없이 자유롭게 공간 속에 사물을 설치해왔다. 카로는 꼴라주 조형으로 간격의 율동을 통해 공간의 자유를 실험했고, 올덴버그는 규모를 통해 로댕이 찾아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 냈다. 카로의 안내로 조각은 지정된 자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공간을 활보함으로써 조각이라는 이름표를 과거로 만들었고, 말 그대로 공간조형 또는 설치 또는 그저 예술로 확장되었다. 크리스토퍼의 대범함은 대지를 캔버스 삼아 드로잉 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저히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자유를 만들어 냈지만 여전히 많은 조각·조형·설치 예술가들은 견고한 공간과 입체에 그들의 침을 튀겼다.

지금까지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그래야 작가가 대답을 할 수 있을 테니.

유리 블럭 속에 물감을 섞은 물을 채우고 빛을 통과시켜 그 이면에 형성된 빛(색) 그림자는 조각이 지나간 궤적인가? 그 궤적을 읽으면 조각을 읽을 수 있는가? 2002년 당신의 작업은 조각 작품을 읽는 방법론에 관한 것인가? 그 궤적은 정말로 많을 수 있는데, 어느 것이 진짜에 가장 가까운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리석은 질문에 입을 다물겠는가?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그 그림자는 원상의 모방일 뿐이라고 했네. 그 말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자의 지혜로운 눈에는 역시 어리석은 질문이겠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실체를 건너뛰고 그 너머에 투사하는 빛의 위치, 세기,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빛 그림자가 조각 세계에 있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물론 진짜, 진실, 실체 등과 같은 단어들이 그대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네.

2010 작업 역시 간격을 채우고 있던 살을 발라내고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보다는 쉽게 보이거나 눈에 띄지 않는 블랙 라이트 광원과의 관계에 의해 겉보기 형태를 만들어내는 껍질 이면에 그 기록을 남기는 빛과 그림자가 흥미롭네. 2002 작업과 마찬가지로 2010 작업은 나에게 스텐드글라스를 통해 어두움이라는 속살로 가득 찼던 성당 덩어리에 빛의 궤적을 드리움으로써 겉에서 보던 덩어리 입체에서 빛을 타고 안과 밖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던 중세인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하네. 중세의 건축가들이 그리고 조각가들이 이미 던졌던 질문, 공간, 입체 그리고 빛을 논제로 시작했던 대화를, 당신의 가까운 조각계 선배들은 이미 종결된 논제로 생각했을까? 나의 이러한 상상이 불편한가? 작가여. 그대가 빛을 보여주었으니 대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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