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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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

작가 작품

바다의 꿈

2018년 경남 거제시

자연-무지개빛 사랑

2019년 경기 수원시

꿈꾸는 달

2018 충북 음성 혁신도시

사랑이 있는 풍경

2018년 경기 김포시

평화-화합

2006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명상 2016 bronze 560x200x340mm

꽃을 든 남자 2017 bronze 1,200x600x2,850mm

그후100년-공간 2017 bronze 500x500x550mm

그후100년-우주 2017 bronze 300x300x340mm

그후100년- 공간3 브론즈500x500x550

기다림 브론즈 420X230X560

꿈 360x160x300

꿈1 자연석 650 X270X 360

초원에서 2019 bronze,자연석 430x320x540mm (2)

파란꿈-Dog 2016 polycoat candy painting 500X 270X600mm

작가 프로필

-국립 까라라 아카데미 조각과 졸업(이탈리아)
-원광대학교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개인전 11회 (이태리. 한국)
-국제미술제. 아트페어 11회 (한국. 중국. 스위스)
-국제조각심포지움 7회 (이태리. 프랑스. 한국)
-대한민국 미술대전 외 심사 및 운영위원 30여회
-서울시, 경기도. 인천광역시, 세종시, 고양시, 파주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역임
-서울시립대. 충남대. 전남대. 원광대. 건양대 출강 역임

현재 - (사)한국미술협회
- (사)한국조각가협회회원
- (사)한국 전업미술가협회
- 한국구상조각회회원
- 고양문화재단 이사

작가 노트

								

평론


                    지구와 문명, 우주와 존재의 관계를
표상하는 조각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그렇지만, 작업에 대한 작가들의 성향도 다르다. 이거다 싶은 하나의 주제 내지 형식에 천착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주제며 형식의 지점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전개하는 성향의 작가도 있다. 각각 하나의 형식을 파고드는 수직형 작가와, 다양한 형식의 지점들을 옮겨 다니는 수평형 작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이 가운데 이용철은 후자에 속한다. 작가는 머무는 법이 없다. 하나의 형식이 얼추 이야기가 된다 싶으면 곧장 다른 형식으로 옮아간다. 한 가지 형식에 머문다는 것이 재미도 없거니와, 해보고 싶은 형식실험에 대한 호기심이 동해서이다. 다른 장르도 아닌 조각에서 매번 형식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하튼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형식의 스펙트럼도 그렇거니와, 매번 그렇게 가닿은 형식의 지점 지점들마다 완성도가 높은 것이어서 더 놀랍다. 실로 조각에 관한한 타고난 손재주 내지는 감각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고 어느 정도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한 것이, 주요 형식 내지는 메인에 해당하는 형식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 닿은 형식의 지점들을 보면 재현 혹은 감각적 닮은꼴(작가는 사람초상을 금방 만든다), 왜곡(예컨대 꽃을 든 남자에서 보는 것과 같은, 납작하면서 길게 늘여진, 보기에 따라선 모던해 보이는 신체), 토템폴(예컨대 전설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무슨 탑을 쌓듯 단위형태들을 수직으로 포개놓은 경우로서, 여기서 낱낱의 형태는 그대로 이야기의 편린들에 해당하고, 따라서 그 부분 이야기들을 역어서 하나의 전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식의, 서사의 또 다른 한 형식을 예시해주고 있는), 유머 혹은 위트(흡사 깡통로봇을 연상시키는, 소시민의 흔한 꿈을 형상화한), 그리고 여기에 여행이나 내면풍경과 같은 자기반성적인 경향을 주제화한 양식화된 형태며, 명상을 테마로 한 유기적이고 추상적인 형태(유기적 추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조각이 보여주고 있는 주제며 형식의 스펙트럼은 실로 다양하고 하나같이 완성도가 높은 것들이다. 하나의 조각적 인격 속에 사실적인 형태, 양식화된 형태, 유기적인 형태, 그리고 추상적인 형태를 두루 아우르고 있는 것인데, 상황논리에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한 경우로 볼 수 있겠고, 그만큼 조각에 대한 유연하고 열린 태도를 예시해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한다. 지금까지 이러저런 형태를 두루 거쳐 왔지만, 그리고 그동안에도 얼추 기하학적 형태 비슷한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뚜렷하게 기하학적 형태를 전면화한 경우로는 이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각각 사실적인 형태, 유기적인 형태, 양식화된 형태를 모두 거친 연후에야 비로소 가닿은 형태, 그러므로 어쩜 최종적인 형태라고나 할까. 보편적 수순이며 현상이라고 볼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작가의 경우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 과정은 어쩜 군살을 제거한 핵심적인 형태며 본질적인 형태를 찾아 나선 지난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종적인 형태? 핵심적인 형태? 본질적인 형태? 그건 어쩜 감각적인 형태라기보다는 관념적인 형태일 수 있다. 실제로 예로부터 기하학은 감각적 실재(이를테면 자연에 연유한)보다는 수학과 같은 순수관념의 표상으로 여겨져 왔다. 조화, 균형, 비례와 같은 조형원리가 모두 기하학에 연유한 것이며, 이로써 감각적 쾌감을 유발하는 형태, 형태의 원인 혹은 형태 중의 형태라고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순수관념의 표상으로 여겨진 만큼 그 형태에 함축된 내용 역시 상징적인 경우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우주, 질서, 완전성, 그리고 관계와 같은.

실제로 작가의 조각을 보면 원형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여기서 원은 완전한 형상을 상징하고, 형상의 원형이며 원형적 형상, 형상의 형상이며 본질적인 형상을 상징한다. 아마도 작가는 원형상의 이런 상징적 의미에 기대어 자기내면에 일종의 질서의식의 성소를 짓고 싶었을 것이고, 우주와 자신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싶었을 것이고, 우주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같은 지정학적 장소(존재론적 장소?)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에서 원형상은 완전성을 상징하고, 우주(우주 곧 코스모스는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형상이며 의미 그대로 우주를 도해한 만다라에 반영되기도 한다)를 상징하고, 그리고 지구를 상징한다. 이런 상징적 의미에는 관념의 표상과 함께 형태적 유사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리고 여기에 크고 작은 사각형의 형태들이 부가된다. 사각형의 형태들이 원형상의 표면에 들러붙어 있는 전체 형상에서 사각형의 형태는 집을 상징하고(사각형의 형태 중엔 실제로 집을 암시하는 변주된 형태도 있다), 문명을 상징하고, 개별존재를 상징한다. 원형상이 순수관념의 표상이며 우주를 상징한다면, 사각형의 형태는 문명을 상징한다. 사각형은 말하자면 문명의 기하학인 것. 실제로 문명의 산물치고 사각형 아닌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집이 그렇고, 책이 그렇고, 가방이 그렇고, 건물이 그렇고, 가로가 그렇다. 그렇게 작가는 우주를 상징하고 지구를 상징하는 원 형상에 문명을 상징하고 집을 상징하고 개별주체를 상징하는 사각형을 결부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지구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삶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러므로 그 형상화는 결국 관계의 관념을 표상한 것일 수 있다. 지구와 문명, 우주와 존재와 같은 거시적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개별주체간의 상호적이고 미시적인 관계를 표상한 것일 수 있다. 주체와 타자, 나와 네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그렇게 사각형은 원형상의 표면에 기생하고, 더러는 그 살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렇게 기생하고 파고드는 형상은 건축적이다. 지구 위에 터를 닦고, 길을 내고, 광장을 짓고, 집을 세우는 문명을 조형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완전성을 상징하는 원형상의 의미를 상기할 일이다. 작가는 어쩜 지구와 문명의 단순한 관계를 표현했다기보다는 완전한 관계며 이상적인 관계를 제안한 것일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그 자체 완전한 관계를 전제로 한)의 관념을 제시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좀 엉뚱하다 싶겠지만, 구조적으로 작가의 조각은 자유변형이 가능한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킨다.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이고 기계적인 덩어리와 덩어리, 부분과 부분이 상호 관계 맺는 정도와 양상에 따라서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재편되고 재구조화될 수 있는, 그런 가변적이고 비결정적인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완전한 관계며 이상적인 관계를 스스로 찾아가는 구조며, 열린 구조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원 형상에 사각형이 결부된 기하학적 형태를 매개로 지구에 기생하는 삶의 모습을 조형하는 한편, 지구와 문명의 관계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상적인 관계며 완전한 관계를 표상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주 곧 코스모스로 표상되는 질서의식의 성소를 자기 내면에다 짓고 있었다. 순수관념을 표상하는 기하학적 형태에서마저 삶의 모습을 보아내고 찾아내는 것인데, 전작에서의 사실적이고 유기적이고 양식화된 형태를 매개로 추구되어졌던 인간에 대한 탐색이 또 다른 형식을 얻은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미술평론가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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