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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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작가 작품

떨어지다

90x61x195cm_느티나무_2018

부질없는 기다림

95x35x210cm_은행나무_박달나무_ 소나무-2018

가위눌림

220x90x70cm_ 느티나무_2018

못을 박다

50x90x163cm_은행나무_느티나무_2018

몸짓

115x52x130cm_느티나무_박달나무_2019

A Flying man

510x450x110cm_ 은행나무_편백나무_2019

몽상가의 시간

99.5x45x174cm_ 은행나무_느티나무_2020

은둔자

72x42x160cm_은행나무_자작나무_ 2020

몽상가의 공간

102x70x224cm, 은행나무_느티나무_소나무_ 2020

A Golden Tree

130x100x305cm_ 은행나무_더글라스_ 2020

작가 프로필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조소) 및 同대학원졸업, 박사수료

개인전 22회
2020: 몽상가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10전시실)
2019: 몸짓 (토마갤러리, 대구)
2018: WOOD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대구)
2018: Time and memory (무학갤러리, 대구지방경찰청)
2017: With (Kunsten Hojer, 덴마크)
2017: 국제조각페스타 부스 개인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2017: 황금닭과 남자 (갤러리C, 대구)
2016: 국제조각페스타 부스 개인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2015: Mills Pond House 갤러리 초대전 (뉴욕)
2015: The Inner Room-Part2 (Houmura갤러리, 삿포르, 일본)
2015: The Inner Room-Part1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3: 기억 속을 거닐다 (하슬라 아트뮤지엄, 강릉)
2013: 서랍장 속의 기억 (갤러리M, 대구)
2011: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지 (제이원갤러리, 대구)
2009: 기억 잡기 (봉산문화회관, 대구)
2008: 꿈꾸는 하루 (KMG문화공간, 대구)
2008: 나무,의자,바람-기다리다 (전갤러리, 청도)
2007: 바람을 기다리다 (수갤러리, 대구)
2006: 바람을 꿈꾸다 (동제미술전시관, 대구)
2005: 사유의 숲 (대구문화예술회관)
2004: 꿈꾸는 나무 (고토갤러리, 대구)
2003: 무의식의 방 (리브갤러리, 대구)

국제조각심포지움,레지던시 및 수상
2017~19: 덴마크 “호이어” 국제 조각 심포지움 및 레지던시 (호이어, 덴마크)
2019: 덴마크 “콜딩” 국제 조각 심포지움 (콜딩, 덴마크)
2018: 덴마크 “오덴세” 국제 조각 심포지움 (오덴세, 덴마크)
2014,2018,2019: 대만 국제 조각 공모전 입선 (대만, 산이미술관)
2017,2018: 덴마크 “호이어” 국제 조각 심포지움 및 레지던시 (호이어, 덴마크)
2016: 독일 “성 브라시엔” 국제 조각 심포지움 (독일, 성 브라시엔)
터키 “이즈미트” 국제 조각 심포지움 (터키, 이즈미트)
덴마크 “손더보그” 국제 조각 심포지움 (덴마크, 손더보그)
2014: “Arctic Arts Week"국제 조각 심포지움 (핀란드, Kakslauttanen산타 리조트)
2013: “Childhood Memories"전 1등상 수상 (뉴욕, Mills Pond House갤러리)
터키 “카르탈” 국제 조각 심포지움 (터키, 이스탄불)
하슬라 아트 월드 레지던시 참가 (하슬라 아트 월드, 강릉)
2012: 터키 “알라냐” 국제 조각 심포지움 (터키, 알라냐)
프랑스“taches/taches" 국제 회화&조각 심포지움 (프랑스, 노르망디)
대만 국제 조각 공모전 “우수상 수상” (대만, 산이미술관)
2008, 2009, 2011: 러시아 “펜자”국제 조각 심포지움 (러시아, 펜자)
2011: 독일 “배드 쉘마” 국제 조각 심포지움 (독일, 배드 쉘마)
2010: 대구 국제 나무 조각 심포지움 (한국, 대구)
2009: 독일 “엡스테인” 국제 조각 심포지움 (독일, 엡스테인)
2007: 스위스 “모르쥬” 국제 조각 심포지움 (스위스, 모르쥬)

단체전 및 기획, 초대전
2020: Family Color (보이드갤러리, 대구)
한국조각가협회 정기전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아름다운 사람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구)
함께이지만 다름의 의미 (고도아트갤러리, 대구)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BEXCO, 부산)
그랬듯, 모든게 일상 (L갤러리, 서울)
화랑미술제 (COEX, 제이원갤러리, 서울)
2019: 김해비엔날레국제미술제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청주공예비엔날레 (문화제초창C, 청주)
봉산미술제 (제이원갤러리, 대구)
KIAF (COEX, 제이원갤러리, 서울)
조형아트쇼 (COEX, 전갤러리, 서울)
Hello! Contemporary Art (대구봉산문화회관)
교토에서 놀자 (소무시갤러리, 교토, 일본)
삼인삼각 (대구대덕문화전당)
ART JAM (니콜라이아트센터, 콜딩, 덴마크)
토마에서 놀자 (토마갤러리, 대구)
Art Expo in Seoul (COEX, 서울)
Unlocked- Art Project Ulsan (울산문화거리)
Harbour Art Fair (마르코폴로호텔, 홍콩)
2018: 발견-가족의정원 (양평군립미술관)
Freedom Time-조각2인전 (쿤스텐 갤러리, 호이어 덴마크)
야외조각 초대전 (오산시립미술관)
The Human and Nature (모산미술관, 보령)
한국조각가협회 대구지부전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대구)
행복 ZOOM (어울아트센터, 대구)
100 Beyond Sculpture (코엑스, 서울)
2017: 열정 (양평군립미술관)
현대조각4인전 (수지미술관, 남원)
Street Sculpture (범어아트스트리트, 대구)
SPACE22 에서 놀자 (SPACE22, 서울)
동촌조각축제 (아양아트센터, 대구)
2016: Fantasy Pill (샤샤마재단 스튜디오, 뉴욕)
강정 대구 현대 미술제 (강정 디아크, 대구)
선-삶의 비용 (대구미술관)
봄에서 놀자 (문화공간 ‘봄“, 대구)
2009~12·2015~19: 대구아트페어 (EXCO, 대구)
2016~2019: 달성-조각으로 꽃피다 (참꽃갤러리, 달성군청, 대구)
2015: 오늘-국제조각전 (갤러리‘오늘’, 대구)
7인의 한국조각가초대전 (Shinajina갤러리, 삿포르 일본)
실험적 예술 프로젝트-‘생활기행’ (예술발전소, 대구)
2014: 하슬라 피노키오전 (세종문화회관, 서울)
국제 입체조형전 (Shinajina갤러리, 삿포르 일본)
2014~15: 강릉대학교 교수 작품전 (강릉 미술관)
2013: Childhood Memories (Mills Pond House갤러리, 뉴욕)
門조각회 정기전 (모란동백갤러리, 대구)
2005~2012: 대구조각가협회 정기전 (갤러리“칸타빌레”, 대구)
2005~2019: 미야자키공항 국제조각전 (미야자키, 일본)
그 외 1992년부터 국내외 단체전 180여회 참여
현 한국조각가협회(대구지부), 한국미술협회, “門”조각회, 경북대학교 강사역임, 강릉원주대 강사역임, 중국 푸젠대학 초빙강사

작가 노트

								

평론


                    이상헌의 표현적 리얼리즘 - 나무(我無) 몽상가(夢想家, dreamer)

이상헌은 28년간 작업과 버거운 사랑을 하는 조각가다. “그 길이 결코 외로운 길은 아닐 거야”라고 한 것은 생면부지의 한 관람객이었다. 실은 관람객이 이상헌의 작품 한켠에 남긴 쪽지의 내용이다. 2009년 레지던시 참여 차 독일에 머물 때다. 쪽지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다음날 전시장에 다시 와서 작가를 안아주며 ‘괜찮아’하고 등을 쓰다듬는다. 할머니의 손길은 따뜻한 모성이었고 너른 품은 우주에 버금가는 위로와 다르지 않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다. 2005년 어느 날 한 여인이 이상헌의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경계를 허물고 긴장감마저 해제시킨 이 여인은 시인이었다. 이상헌의 작품에 자신의 삶이 오버랩되어 울컥했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이었다. 작가는 그 당시를 남녀노소 국적 불문의 보편적 감정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소통수단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는다. 매혹적인 컬러의 이미지에 더해 자유롭게 구성된 내용은 재활성화된 포화상태다. 이미지 복제의 메커니즘이 새로운 언어구조까지 형성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현실은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의 동시대적인 소임까지 질문하게 한다.

눈물은 또 다른 형태의 공감이다. 위로의 손길에도 같은 감정이 녹아 흐른다. 모두 소통이 원천이다. 소통은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스며듦이다. 낯섦을 친숙함으로 전환 시킨 소통은 타인과 나를 하나가 되게 한다. 최단 시간에 예술작품이 공감의 통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상헌의 조각 작품이 그 중심에 있다. 예술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심층 깊은 곳에 숨어있던 감정까지 건드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상헌의 조각이 지닌 힘이자 차별화이다. 거기에 수반된 진정성과 필연성이 궁금하다.

그는 청년기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과거 작품 중 인체 조각상 머리에 문을 내어 복잡한 뇌 구조를 공개하게 된 계기이다. 머리에는 문과 의자를, 몸에는 서랍을 달기도 한다. 가슴은 폭넓게 뚫었고 팔과 손은 크게 과장했다. 뚫린 가슴에 단 상자는 심상박스다. 작가는 심상박스 안을 시간으로 채웠다고 한다. 이상헌이 채운 시간은 멈춰있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유동적으로 흘러간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열매가 익어가고 의자가 나무처럼 자란다. 상상이 잉태한 작품 속의 이러한 조형들은 모두 그를 한계상황으로 내몬 병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그에게 미학적 대상은 줄곧 작가 당사자였다. 그의 미학은 심신의 아픔이 영글어서 변형된 것이다. 아픈 삶을 정제시켜 예술로 번안한 이상헌의 작품은 자기 자신과 나눈 대화의 모체이자 영혼의 기록이다. 내면에 잠재된 본질적인 징표에 기반한 이러한 작업은 독백과는 결이 다른 자전적 스토리텔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나텔로(Donateeel, 1386?~1466)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막달라 마리아>와는 또 다른 차원의 표현적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아름다웠던 육체는 피폐해졌으나 내면은 한층 더 고결해졌음을 암시하는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전한다면 이상헌의 <몽상가>는 그 반대다. 작가에게 건강한 몸은 폭발하는 감정을 순화시켜서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도구이다. 건강한 몸은 작가의 아픈 정신의 회복을 돕는 수단이자 지지대이기도 하다. 분해되고 과장된 이상헌의 몽상가(dreamer)가 헛된 망상가가 아닌 이유는 그 밖에도 많이 있다. 작업을 에워싸고 있는 유기적인 장치가 절박하고 진실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 있지 않다.

그는 초기작 이후부터 전통적인 작업방식을 유보한다. 내재한 감정을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선택인 듯하다. 뚫린 가슴이나 머리에 단 창문 외에도 황금비율을 과감하게 벗어 던진 인체의 왜곡이 그것을 입증한다. 왜곡과 과장은 이상헌의 감정(주제)표현과 맞닿아 있다.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변형마저도 자전적(自傳的) 이야기를 토대로 하기에 그의 작품은 표현적이지만 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상반된 두 요소가 오묘하게 버무려진 이상헌의 ‘나무 몽상가’가 표현적 리얼리즘이라 할만한 이유이다.

조형예술은 생활을 위한 테크놀로지와는 다른 차원의 상상력과 노동력을 요구한다. 작가가 망치와 끌, 칼과 도끼 같은 도구로 나무를 매만질 때는 상당한 노동력이 동원된다. 이러한 노동이 이상헌에게 있어서는 사유의 과정이다. 작품의 재료인 나무(木)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 치유의 매개체다. 합성수지, 화공약품, 석면 등을 사용하다가 나무(木)로 작업재료를 바꾼 것은 건강 때문이다. 나무(木)는 자연 친화적인 재료이기 전에 나무(我無)로도 통한다. 내가 아니다 또는 없다는 뜻이다. 아픈 심신을 내려놓게 한 나무(木)가 작가에게는 나무(我無)가 아니었을까. ‘나무 몽상가’가 ‘표현적 리얼리즘’인 추가적인 이유이다.

작업의 마무리 단계는 모두 손으로 한다. 이상헌에게는 손노동이 유일한 작업의 에너지원이다. 때문인지 그의 조각은 초기작부터 단단했다. 재료가 느티나무나 박달나무여서가 아니다. 조각가가 갖추어야 할 기초를 단단하게 다졌다는 뜻이다. 날 것의 느낌을 존중하는 그는 벌레가 지나간 흔적조차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둔다. 이미지 전달에 앞서 느낌의 공유야말로 작가의 소명이라 여기는 그의 소신이다.

이번 2020년 대구문화예술관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중견작가전’에 전시할 작품의 타이틀은 ‘몽상가(夢想家, dreamer)’이다. 2019년 제작한 천장에 매단 을 비롯해 2020년에 제작한 <황금나무 Golden tree>, <몽상가의 시간 dreamer’s time>, <몽상가의 공간 dreamer’s space>, <몽상가의 초상 a dreamer’s portrait> 외에도 <경계 Boundary>, <은자 Hermit> 그리고 네 점의 <정체불명 unidentified> 시리즈가 그것이다. 몽상가는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이상헌의 ‘몽상가’와는 거리가 멀다. 이상헌의 몽상가(夢想家, dreamer)는 사유(思惟)의 응집(凝集)이다.

그에게 사유는 정제된 시간의 진액이다. 정제된 시간으로 점철된 몽상가의 속살은 유순한 감성 덩어리다.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인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텔링을 들어보면 그렇다. 얼핏 보면 거칠고 투박하지만,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면 한편의 서정시 같다. 순(順)하고 유(柔)하고 선(善)한 그것이 삶이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함몰되어 있던 한 작가의 작업과정과 삶의 인내를 반추하게 한다. 15년 전(2005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주최한 ‘올해의 청년작가초대전’에서 4m 높이의 의자 4개를 설치한바 있는 작가는 이번(2020년)에도 의자를 등장시킨다. 우연의 일치다.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의자는 작가 자신이 아닐까 한다. 야윈 그 의자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

이상헌은 당대가 직면한 상황묘사에도 게으르지 않다. 세계는 지금 유해 바이러스 코로나 19로 인해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는 중이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전 지구가 직면한 현실을 직시한 작가는 새로운 의제를 제시한다. 그가 자기 집중적이던 시선을 밖으로 돌린 이유는 불특정다수가 안고 있는 현재의 불안을 작업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다. 최근작 ‘몽상가(夢想家, dreamer)’의 탄생 배경이다.

작가는 28년간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내재한 기억을 나무로 소환했다. 이번에는 사람과 의자, 책 등을 함축한 ‘몽상가(dreamer)’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수없이 되뇌고 아로새겨 탄생한 ‘몽상가(夢想家)’는 현실을 직시한 작가 자신의 자아상(自我像)이자 우리 모두의 자화상(自畵像)이 아닐까 한다. 그의 ‘몽상가(夢想家, dreamer)’라는 알레고리가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아이콘이 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이번 전시 이후 더욱 새롭고 적극적일 작업세계도 기대한다.

2020년 6월 12일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장
서 영 옥


이상헌의 개인전 ‘나무’
나는 나무다
1.
달성에 있던 작업실을 의성으로 옮기고 나서 첫 방문이다. 시내를 잠시만 벗어나면 아파트 숲에서 산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들과 산을 본다. 무엇보다 건물들 사이 조각난 하늘풍경이 한눈에 환하게 펼쳐있어 마음까지 환해진다. 주소 따라 간곳은 여름 햇살 한껏 품은 곡식이 익어가는 논길 어귀였다. 초행길이라 두 갈래의 길에서 전화를 건다. 좁은 도로 옆 길가에 잠시 기다리는 동안 논과 밭 그리고 하늘을 본다. 유난히 더웠던 한여름 햇살 품은 벼가 빠끔히 연둣빛 머리를 내민다. 금방 달려온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 푸른 풍경 사이 길 따라 작업실에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반기는 것은 짙은 나무향이다. 다양한 모양의 목 조각들과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공간가득 놓여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꾸로 떨어져 내리는 듯 동적인 이미지의 넥타이를 맨 남자, 팔을 들고 책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사람,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학생 등 한번쯤 선뵌 작품과 또 새롭게 선보일 작품이 작업장을 채우고 있다. 그 사이 길을 만들 듯 의자에 쌓인 먼지 닦는 작가의 손길 닿은 자리에 앉았다.
이번 수성아트피아 호반전시실에서 보여줄 전시에 대한 주제가 ‘나무’다. 나무로 만든 정교한 형상보다는 나무의 투박한 질감을 살리는 전시라고 한다. 그 중에서 완성된 나무 조각 하나가 ‘추락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거칠게 조각된 <떨어지다>라는 제목이다. 이 조각은 2미터 정도 길이로 동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이 보다 강조되어 있는 느티나무 조각상이다. 길게 늘어진 넥타이가 팔 다리와 함께 나란히 거꾸로 서있다. 정확히는 서 있기 보다는 방금 바닥으로 떨어진 듯 정지된 장면에 움직임이 들어 있다. 이 동세가 들어간 조각은 지금 이 순간, 그 자신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처럼 현실 앞에서 추락하고 있는 나무 조각은 작가 자신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이렇게 이번 전시 주제를 그냥 ‘나무’라고 말하는 이상헌의 전시는 바로 자기 자신이 투영된 ‘나는 나무’가 된다.
2.
나무 조각을 하면서 살아온 조각가의 삶과 예술 사이를 매개하는 ‘나무’가 단지 조각적인 재료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주제는 ‘나무’다. 여기서 나무란,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가정하기보다는 ‘나무’ 그 자체, 작가 자신이기도 한 ‘나는 나무다’인 것이다. 그래서 이상헌의 이번 전시를 위한 나무 조각은 자신의 호흡을 담고 어제와 내일을 품고 있는 오늘의 자화상이다. 은행나무로 조각한 5미터가 넘는 <어제의 내일>은 지금까지 살아온 그 자신의 희로애락의 삶과 예술을 정중동속에 함축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 ‘나무’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나무의 결에 투영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상헌은 그 자신의 삶과 예술과의 괴리 속에서 경험한 심리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나무의 결을 살리거나 곱게 다듬지 않고 거친 질감을 강조하고 있다. 정교하게 마무리했던 이전의 조각과 다른 접근방식이다. 그간에 구체적인 형상과 매끈한 마무리로 유머와 풍자 혹은 그리움과 기억을 담고자 했던 형상성에서 벗어나 동적인 움직임과 감정의 표현을 강조한다. 그의 이 같은 시도에는 현재 그 자신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자전적 감정이 결합되어 있다.
이상헌의 작업적 주제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다. 그동안 지속해 왔던 남녀노소의 초상조각은 일상의 오브제와 결합되거나 그리움이나 기억 속에 있는 듯 눈을 감은 모습 그리고 익살을 담고자 했던 피에로의 희극과 장중한 삶의 무게가 담긴 비극 역시 담아냈다. 이처럼 그의 나무 조각은 연극무대를 연출하듯 비극과 희극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마치 만담가처럼 그의 손이 만든 재치와 솜씨는 삶의 속살을 흥미진진 나무에 새긴 현대인의 표정이었다. 이처럼 익명의 현대인의 표정에 집중해 왔던 주제가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역동성과 감정표현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익명의 초상조각이 아니라 삶의 서사가 담긴 조각, 바로 자신의 얼굴이 투영된 ‘나무’전이다. 이상헌에게 있어 나무는 긴 시간 수많은 삶을 담기 위해 손으로 마음으로 또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재탄생하게 하는 삶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바로 그 자신을 보고 감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무와 사람을 결합해 그만의 존재감을 만들고자 몸과 마음을 담았던 세월, 그 시간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즐거움을 전하려던 이상헌은 지금은 그 자신의 현실적 삶의 서사 앞에 서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무속에서 발견한다. 이번 전시가 ‘나무’인 이유다.
25년 동안 쉬지 않고 작업을 했다. 뇌종양과 사투를 벌이고 나서 유일한 희망은 나무 조각이었다고 한다. 목 조각은 그에게 삶 자체였다. “나무는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급한 마음으로 톱을 들이 대면 톱날이 날아갔다. 거칠고 모난 나무를 길들이려는 시간은 나무 역시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었다.”
내가 나무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었음을 인식한 그가 나무같이 보였다. 동행했던 이가 작가의 목소리가 마치 나무소리를 닮았다고도 한다. ‘내가 곧 나무’라고 하는 나무 조각가는 그렇게 자신을 조각하듯 나무를 조각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그런 자신의 모습, 서랍 속 기억도 피에로의 모습을 한 익명의 현대인도 아닌 바로 ‘나무인 나 혹은 나인 나무’, 나무에 투영한 그 자신의 현실을 담고자 한다. 예컨대 이번 작품 제목이 보여주는 <빈손>은 자신이 처한 현실인식이다. 아무 것도 없는 빈손에 담긴 의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손과 마음으로 감각하며 빚어낸 그 자신, 나무를 만지고 깎는 과정에서 나무의 내면, 정확히는 나무를 통한 그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이다. 나무의 내면이 곧 자신의 내면이 되는 것, 나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가위눌림>은 바닥에 누워 있는 자신, 잠에서 깨는 순간이거나 악몽과도 같은 현실인식을 투영한 모습이다. 삶의 현실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악몽과도 같은 불쾌한 꿈이 현실이라면, 그 현실은 어떻게 극복 가능할 것인가. <가위눌림>은 악몽과 길몽의 경계, 어둠과 빛, 밤과 낮 사이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순간, 이 경계에서 악몽보다 나은 현실을 보게 하는 역설이 담겨있다.
3.
악몽보다 나은 현실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야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다. <부질없는 기다림>은 수동적인 약자의 마음을 보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지의 반영이다. 은행나무와 박달나무 그리고 소나무도 합세한 조각이다. 30년 이상 자라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은행나무와 물에 가라앉을 만큼 단단하고 무거운 박달나무에 바늘잎을 가진 늘 푸르른 소나무가 ‘부질없는 기다림’으로 뭉쳤다. 세 가지의 나무로 조각하는 <부질없는 기다림>은 기다림에 대한 역설이지 않는가. 한 세상 살아가면서 부질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기다림이 부질없다함은 기다리게 하지 않는 삶에 대한 의지가 보다 명확해진다.
양지에서 크는 나무보다 음지에서 크는 나무는 느리지만 더 단단하게 자란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그것은 풍요와 생산의 상징인 나무를 통해 삶과 예술의 생명력을 체험하는 작가의 삶이자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다. 이상헌이 나무를 통해 얻은 것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갖게 되는 생명력이었다. 그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지독한 고통을 받아들여 극복했던 것처럼, 혼자만의 방에 갇혀 가위눌린 것처럼 악몽을 꾸는 이들과 함께 나무의 생명력이 담긴 나무 조각에 자신을 투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상헌의 이번전시 ‘나무’는 아픔을 겪고 이겨낸 삶에 대한 자기 성찰이 어떻게 나무에 투영되어 있는지 감각해 보는 시간이다.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바닥에서 다시 일어나 나무의 생명력에 나를 투영해 놓은 조각상,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 나무가 나인 듯, 내가 나무인 듯 깊은 숨으로 호흡하며 나무 닮은 나를 새롭게 조각하는 시간이다.
(김옥렬/현대미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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