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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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해란

작가 작품

선인장이자라는 집-ll

90x50x195cm .2006

변덕스러운집

굼꾸는집

선인장이 자라는 집I

382986cm 이태리대리석 2008

천사

사암 15x25x15cm2014

6.Pink Wing

Somehow2015

still life II

Silence

브론즈2015

부유하는 집

조형물-나들이

조형물-동화속여행

조형물-바다속 여행

조형물-바람속산책

조형물-하늘을 꿈꾸는 아이들

작가 프로필

학력및 경력
1988년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졸업
1991년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대학원 조소과 졸업
(강의경력)
1994년_ 1999년 서울미술고등학교강사
1995년 ~1997년 이화여대 소조강사
2001년 - 2003년 전주교대 강사
2012년~ 2015년 이화여대 석조강사

작품소장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
대전동물원 조각공원
서울숲 조각공원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개인 전
2018년 7회 개인전 “꿈꾸는 집” 갤러리GO초대전 (갤러리GO 인천)
2015년 6회 개인전 “Theme From Angel” (갤러리한옥)
서울국제 조각 페스타2015 -부스전 (예술의 전당)
2012년 5회 개인전 “꿈꾸는 집” 서울국제 조각 페스타2012- 부스전 (예술의전당)
2008년 4회 개인전 ‘MANIF4’ 서울국제 아트페어(예술의전당)
2003년 3회 개인전 “집” (관훈갤러리)
1998년 2회 개인전 “길들이기-방” (다다갤러리 초대전)
1996년 1회 개인전 “꿈꾸기” (덕원갤러리)
그룹전 및 초대전
2020년 “축복” (Gallery We)
2019년 -오두산 굴다리 벽화제작-평화누리길 벽화예술공모 당선(경기관광공사)
엑상프로방스 아트페어2019 (프랑스)
KRAFTWERK 2019 "호모심비우스 HOMO SYMBIOUS"
(마포문화원주최 당인리발전소앞야외전시)
"NOCTURNE " (GALLEREY-ROLLAND)
2018년 한국마사회 말박물관 특별전 ‘백인백마(百人百馬)’
2017 “시대적 예술의 시선전 ” (갤러리 GO)
호해란, 조은희 2인전 (현대 아산갤러리)
2016년 『Stone Works Today』 초대전 (김종영미술관)
2016 Seoul Morden Art Show (예술의전당)
2015년 “너와 겨울 ” 조각그룹너와 (갤러리밈 )
“다름있어 아름있어 아름답다”이화조각회 (갤러리ala)
2014년 -사적 史的 ,私的조각 한국현대조각의 아카이브Archive-
30회 한국 조각가 협회전- (KOSAspace Gallery)
“Future of Asian Sculpture” (유나니티드 갤러리, 서울)
"Street Furniture"고양조각회 (일산호수공원)
“화해와 화합의 한.일전” 녹미미협 (주한일본대사관, 서울)
-바람조각 기억 한 조각-조각그룹 너와 (남포미술관, 고흥)
neowa sculptor' society
-Wonderful,벅찬-아화조각회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2013년 "Volare"-이화조각회초대전-( Lynn J Gallery, USA)
-조각그룹너와-하늘. 바람. 조각(하슬라 아트 뮤지엄, 강릉)
-Art Promenade in Kurobane-(Ohtawara-City,Japan)
2012년 2012 Nasunogahara International Sculptre Symposium in Otawara
(오타와라,일본)
KIAF/12, 11th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COEX, Seoul)
2012년현대조각초대전 (Chuncheon Munhwa Brodcasting Corp)
조각그룹너와 “너와, 어린왕자를 만나다” (한전아트센타갤러리, KEPCO)
2012 Seoul Modern Art Show (AT 센터)
화랑미술제 (COEX,Seoul)

2011년 “Intimate Space” Neowa Sculptor's society
(한전아트갤러리 기획초대전)
화랑미술제 (COEX,Seoul)
Ritz Carlton Hotelartfair ( Ritz-Carlton, Seoul)
"Dream Like"(갤러리카페다미안)
서울미술대전 한국현대조각2010(서울시립미술관본관)

2010년 "WITH" 이화조각회(한전아트갤러리 기획초대전)
“A Mirtiful Walk”, (Moon Gallery, 홍콩)
조각그룹너와 (한전아트갤러리 기획초대전)

2009년 화해와 화합의 한.일 展 (해태 쿠오리아 갤러리)
新 능판화-전통 목판화와 모던디자인의 만남 (김내현화랑)
Songdo Repor t(인천 카톨릭대 야외조각공원)
노래하는 눈 (구로 아트밸리)

2008년 - Ecotopia- 고양조각가협회전(일산호수공원주제광장)
한일 여류미술전(Gallery In The Blue 일본)
한국.베트남2세 후원전(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 대로비)
결식아동돕기 조각 50인전(로즈1타워 특별전시장))
2007년 2007성남시탄천페스티벌 탄천야외조각전(성남시 탄천로)
한.인 미술교류전(인도 델리)
화해와 화합의 한.일전(이화갤러리)
2006년 파주오픈 아트페스티벌-파주현대작가전(헤이리)
Nomaa갤러리 개관기념 초대전 (Nomaa갤러리)
토파즈갤러리 초대전 (목동현대백화점갤러리)
Emotion-Humanity-Seoul展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05년 “사물의 기억” 너와조각전 (갤러리 DOS초대전)
“지성과 감성”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횡단과 종단” 고양 조각가 협회전 (일산미관광장)
"색깔 있는 조각" 한국 구상조각회전(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춘천 MBC 야외조각 초대전 (춘천MBC)
이화조각전-"Analogital" (모란미술관)
작은 조각 초대전 (선 화랑)
"Material Matters" (ZONE cheisea. NY)
도시환경과 조형예술의 탐색 (인사갤러리)
2004년 Data-Base 이화조각전 (갤러리라메르)
구상조각회전 (Wing 갤러리)
너와 조각전(아트사이드)
2003년 2회 "STREET FURNITURE" 고양 조각가 협회전 (일산미관광장)
"금빛 날개"-경기 북부의 회화와 조각 (경기도 제2청사 신축이전 기념전)
너와 조각전 (갤러리 까페 봄)
도라산역 "통일 염원 전" (도라산역사)
2002년 "쓰임이 있는 아름다움" 이화조각전 (예술의전당)
"STREET FURNITURE" 고양 조각가협회전 (일산미관광장)
"금빛 날개"-경기 북부의 회화와 조각(경기도 제2청사 신축이전 기념전)
2001년 구상조각회전 (Wing 갤러리)
너와조각전 (아트사이드)
이화조각회전 (덕원갤러리 )
1999년 너와조각전 (관훈 갤러리 )
이화조각회전 (덕원갤러리)
1997년 조각회전 (문예 진흥원)
한국성 그 변용과 가늠 전 (공평 아트센터)
1996년 한국 현대 조형 작가회전 (베트남 국립미술관, 문화일보 미술관)
이화 조각회전 (덕원 갤러리)
현대조각 100인 초대전 (춘천 MBC)
이화 - 젊은 - 모색 전 (이화여대 창립 50주년 기념 초대전)
한국성 그 변용과 가늠 전 (모란 미술관)
1995년 환경 조각을 위한 모형 전 (조형 갤러리)
한국성 그 변용과 가늠 전 (종로 갤러리)
한국 현대 조형 작가회전 (아르헨티나 미술회관)
1994년 한국성 그 변용과 가늠 전 (서경갤러리, 인제 미술관 초대전)
한국 조형 작가회전 (중국 미술학원 화랑, 효천 갤러리 초대전)
이화 조각회전 (문예 진흥원)
너와 조각전 (토 아트 스페이스)
“도깨비 해석”전 (서남 미술관 개관 2주년 기념 초대전)
1993년 한국성 그 변용과 가늠전 (공평 아트센터)
너와 조각전 (인데코 갤러리)
이화 조각회전 (문예 진흥원)
“종교를 바라보는 눈” 전 (동호갤러리)



현 재 한국 미술협회, 한국조각가협회, 이화조각회, 고양조각가협회 회원
조각그룹너와, 파주아트벙커

작가 노트

								

평론


                    평론 -고충환 

호해란의 조각에는 곧잘 사각의 틀이 변형되고 변주된 형태가 등장한다. 집은 숨어있기 좋은 방 혹은 꿈꾸기 좋은 집이다. 집도 그렇지만 방 역시 이중적이고 양가적이다. 주체에게 집은 안온하지만, 타자에게 집은 호기심의 대상이면서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체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잠재적인 타자이기도 하다. 이로써 집이며 방이 갖는 이중성이며 양가성을 주체가 자기 정체성으로 내재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은 주체를 보호하면서 고립시킨다. 나는 현실도피를 꿈꾸면서 동시에 현실로부터 잊힐까 두렵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하지만 여차하면 재차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도피하고 그 전제만큼만 감행한다. 현실로부터 완전히 도피하지도 못하고 현실에 완전히 정박하지도 못한다. 그 사이를 가름하는 경계에 집이 있다.
때로 집보다도 크고 사람보다도 큰 식물, 작가는 이 모든 정황을 단순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 조각 속에 담아냈다. 지붕위로 피어난 식물은 집이 꾸는 꿈을 상징하고, 집이 키우는 이상을 상징한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키워내는 긍정적인 세상(집)의 표현이기도하다.
풍경조각을 통해서 그 꿈과 이상이 승화된 형식을 얻어 하나의 풍경이며 전망으로 열리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호해란의 조각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꿈꾸기, 방, 집. 그동안 호해란이 자신의 조각에 부친 주제들이다. 작가의 조각은 사사롭다. 자기 내면에 집을 짓고 방안에서 꿈을 꾼다. 여기서 꿈은 여행을 의미하고, 그 여로는 자기 내면을 향한다. 오로지 자기와의 만남을 위해 자기 내면에 집을 지었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은 내면의 곁을 맴돈다는 점에서 자기 반성적이고 존재론적이다. 그리고 그 내면에 지은 집에서 꾸는 꿈이 초현실적이다. 여기서 내면은 무의식을 상징하고, 욕망을 상징하고, 외상을 상징한다. 내면에 지은 집을 이루는 건축자재들이고 성분들이다. 초현실은 현실로부터의 초월을 의미하고, 그 의미처럼 작가는 자기 내면으로 초월한다. 여기서 초월은 꿈을 매개로 한 여행과도 통하고, 그 여로가 유목주의와도 통한다. 꿈은 말하자면 초현실주의와 유목주의가 공유하는 매개로서 무의식(초현실주의의 경우)의, 그리고 사유(유목주의의 경우)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은 자기 반성적이고 존재론적이다. 초현실적이고 유목적이다. 작가의 조각은 사사롭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사로움은 자기에 함몰되지가 않고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얻는다. 누구나 내면이 있고, 자기 내면에 집을 짓는다. 다만 그 정도와 경우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내향성 곧 자기 내면을 향하는 경향성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사사로운 조각은 사사롭지가 않다.

내면으로의 초월은 내면이라는 바깥으로 초월하는 것이다. 니체는 존재가 궁지에 몰리면 내면이 열린다고 했다. 존재가 궁지에 몰릴 때 내면이 열린다. 그러므로 그렇게 열린 내면은 또 다른 바깥일 수 있다. 존재가 궁지에 몰릴 때라는 전제, 존재가 궁지에 몰린다는 전제, 존재를 궁지에 내몬다는 전제 하에서만 비로소 열리는 내면이다(니체는 미학의 궁극이 용기라고 했다). 자기 내면으로 초월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관성의 바깥으로 초월하는 것이다. 어쩜 꿈꾸기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바깥으로 초월하는 것이고, 바깥의 사유가 실천되고 실현되는 장일지도 모른다(여기서 니체와 모리스 블랑쇼 그리고 질 들뢰즈가 만나고, 유목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만난다).
그렇게 작가의 조각에서 방은 그리고 집은 내면을 상징하고 존재를 상징한다. 그리고 존재는, 존재의 상징은 선인장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선인장은 가시가 잎이다. 물이 없는 사막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최대한 에너지 손실을 막기 위한 것이며,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 그 꼴이 사람 사는 세상과 비슷해서 흔히 선인장은 존재를 상징한다. 사람 사는 세상 역시 살벌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존하기에 급급하고,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저마다 선인장의 가시와도 같은 날을 세운다. 때로 그 날은 타인을 상처 입히고 자기도 상처를 입는다. 상처의 이중성 내지 양가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상처를 내재화한 존재가 연민을 자아낸다. 그렇게 작가는 집 곁에, 그리고 방 옆에 선인장을 키운다. 그리고 그렇게 집과 방으로 하여금 내면을 상징했고, 선인장으로 하여금 존재의 외상을 상징했다. 선인장은 말하자면 외상을 상징하고, 그 외상이 연민을 자아낸다. 외상과 연민이 선인장의 두 얼굴(그 자체 존재의 이중성 혹은 양가성과도 통하는)인 셈인데, 여기서 작가의 경우에는 외상을 강조하기보다는 연민 쪽에 방점이 찍힌다. 몽환적이고 내면적이고 초월적(그 자체 초현실과도 통하는)이고 서정적이고 시적인(함축적인?) 인상이, 그리고 부드럽고 우호적인 질감이 연민과 함께 친근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작가는 선인장을 모티브로 한 또 다른 조각으로 근작을 연다. 머리에 선인장을 이고 있는, 아예 머리 자체가 선인장인 사람이다. 전작에서 선인장은 집과 함께였고, 풍경의 일부였다. 그렇게 집 곁을 지키는 선인장은 연민을 자아내는 존재를 상징했고, 집이 꾸는 꿈을 상징했다. 그 꿈이 머리로 옮겨왔다. 꿈은 머리로 꾸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꿈이 자라고, 선인장의 마디처럼 연민이 맺힌다. 작가는 그 사람을 <침묵>이라고 부른다. 침묵은 자기형태 안쪽으로 살을 찌우는 선인장으로 나타나고,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으로 현상한다. 그리고 특히 검정색 브론즈 마감이 이런 침묵을 강화시켜준다. 검정색 브론즈는 금속이면서 금속 같지가 않고, 티타늄과 흑연 같은 광물을 연상시키고, 표면의 빛을 자기 내부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내향성을 암시하고, 그 내향성의 질감이 침묵과도 통한다.
작가는 그렇게 내향적인 존재를, 침묵하는 사람을 조형했다. 때로 침묵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고, 더러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말을 뱉지 않고 삼킨다. 말을 하지 않고 속말을 한다. 그렇게 자기 내면에 말이 쌓인다. 그렇게 자기 내면에 말의 살을 찌운다. 그리고 그렇게 소통이 줄어들고 독백이 늘어난다. 자크 라캉은 사람들은 언제나 실제로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고 했다. 의식과 함께 무의식이 말을 하는 것이며, 의식 뒤편의 몸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의식이 하는 말이며 몸이 하는 말(몸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방에게 가닿지 못한 말들, 어쩜 실패한 말들이 침묵으로 쌓인다. 그러므로 침묵은 소통되지 못한 말들, 재차 자기에게로 소환된 말들, 어쩜 상처로 화해진 말들이 쌓이는 저장고일 수 있다. 그렇게 자기 내면에 말의 살을 찌우는 선인장이 우의적이다. 선인장이 사람이 꾸는 꿈이 되고, 선인장의 살이 침묵하는 말의 살이 된다.
풍경의 일부에서 선인장이 떨어져 나온 것도, 사람과 그 형상이 결부된 것도, 사람이 전면에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그렇게 침묵하는 사람이 작가의 전작과 근작을 구분하면서 매개시켜준다. 그렇게 경유지와도 같은 것이면서, 전작과 근작을 통 털어 눈에 띠게 이례적이다. 이후에 작가의 조각이 상징에서 우의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예시해줄 만큼 이례적이고, 차후에 작가의 조각이 정박하게 될 지정학적 위치를 가늠하게 해줄 만큼 예외적이다.

그렇게 작가의 근작에는 사람들이 전면화한다. 더 이상 집과도 선인장과도 결부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들이다. 풍경 혹은 풍경조각의 일부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족적인 사람들이다. 어떤 풍경 속에서, 어떤 상황과 더불어서, 어떤 관계 속에서 분리되어져 나온 사람들이다. 그 풍경을, 그 상황을, 그 관계를 오롯이 자기에게 거두어들여 자기 내면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는, 그리고 그렇게 자기 내면과 대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감긴 눈은 사실은 자기 내면을 향해 열린 눈이다. 그렇게 자기 내면을 향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존재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소통에서 존재로, 말에서 침묵으로, 침묵을 통해서 말을 거는 기술 쪽으로 이행해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머리가 크고 몸이
그 선남선녀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특이한 사실이 발견된다. 하나같이 어깨 쪽에 날개를 달고 있는데, 너무 작아서 날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날개가 퇴화된 것 같다. 한때 실제로 하늘을 날아올랐을 존재를 기억으로 그리고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존재의 표상 같다. 우리는 이처럼 한때 하늘을 날아다녔었다. 꿈을 꾸고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꿈을 꿀 수도 꿈을 꿀 일도 없어졌다. 덩달아 이상은 결코 현실 위에 정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날개를 쓸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더 이상 날개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이 줄어들면서 날개도 줄어들었다. 이처럼 줄어든 날개며 퇴화된 날개는 무슨 의미인가. 선인장이 그렇듯 퇴화된 날개도 이상을 상징한다. 선인장과 마찬가지로 날개도 꿈을 상징한다. 선인장처럼 날개 또한 외상을 상징한다. 선인장이 양가적이듯 날개의 의미 또한 양가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퇴화된 날개는 꿈이며 이상을 상징하고, 좌절된 꿈이며 이상을 상징하고, 그렇게 좌절된 꿈이며 이상을 내재화한 외상을 상징한다.

선인장을 조형할 때 작가의 조각은 선인장의 두 얼굴 곧 외상과 외상이 불러일으키는 연민 중에서 연민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다고 했다. 지상의 천사들 역시 외상 쪽보다는 연민을 자아내는 편이다. 연민이란 어쩜 내면의 상처가 외면화된 것일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렇게 감정에 호소해오는 상처의 울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작가는 바로 그 상처의 울림에 귀 기울이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작가가 조형해놓고 있는 지상의 천사들이 사람들 저마다 품고 있을 꿈을, 이상을, 상실을, 좌절을, 외상을, 그리고 연민을 자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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