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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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식

작가 작품

작가 프로필

작가 노트

				(60生涯의 문턱에 서서)
모든 藝術家들은 求道著的인 埋念으로 多樣한 樣式과 多樣한 丙鎔을 表現한다. 그러나 다양한 내용의 表現樣式에서 造形槪念이나 万向惑覺이 없는 焜濁한 表現行호는 現代美術의 한장르로서 여겨질지 모르지만 값진 作品으로서의 認定은 어려울 것이다.
어떠한 作品이건 獨創性과 涸性이 없다면 한정된 時間性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藝術作品이 表現根原은 靈感과 感動에서 생기고 獨創性과 個性이 있어야 하는데 근래의 우리 美術界는 좋은 작품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混濁하고 困難한 狀況이다.
大理石産地로서 世界的으로 유명한 ITALIA의 VERSILIA地方은 彫刻美術의 國際的인 活重舞臺이며 國籍이 다른 각국의 代表的인 유명한 作家들과 靑雲의 꿈을 품고 모인 젊은 美術學徒들이 大埋石 彫刻批究와 創作活動에 精進하고 있는 곳이며, 또 이곳에 모인 作家들의 作品에 대해 서로 그 性格과 質이 쉽게 比較되는 곳이기도 하다.
1년간(1989년 12월~1990년 12월) 까라라에 있는 S.G.F. 彫刻硏究所에 國費海外派遣硏究敎授로서 大埋石作品의 硏究와 創作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 소중한 機會가 되었다. S.G.F.에서 완성된 新作을 갖고 까라라 文化協會 畵廊에서 招待個人展(1990년 11월 5일~16일)도 가질 수 있었다.
개막 첫날은 까라라巿長을 비롯한 많은 外國作家들이 參席하여 환대와 친교로서 성황을 이루었으며 특히 아낌없이 정성껏 통역을 맡아준 쯔지야 마사루(土屋 勝), 화랑代表 푸라다리 바울로, S.G.F.의 실비오, 마리오, 그리고 美國作家 마이클 등의 友情은 잊지못할 追憶이 되엇다. 삐에뜨라산타에 사는 美術評家 로도비꼬는 S.G.F.製作室에 세번이나 訪問하였고, 베로나에 거주하는 評論家 엔조 산데제는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월간미술지 "데르죠교" 10월호(1990년)에 나의 작품 ㅈ점을 소개하고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란 제목으로 特別記事化하는등 好評을 아끼지 않았다.
國費연구기간동안 大埋石彫刻의 極致를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言語와 國籍을 초월한 作品世界의 相互對話는 4次元的인 共惑帶를 形成해 주었다.
그러나 彫刻美術에 入門하여 創作活動 35년이란 긴 歲月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作品 한점을 構想하고 製作하는데는 오랜 産苦의 힘든 過程을 거쳐야 한다.
彫刻家로서 立문身하여 60生涯에 첫 개인전을 갖는다는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하고 自慰해 본다.
獨創과 個性있는 作品은 바로 그 작가의 모습이고 그 작가의 思想과 精神의 分身이기에 설레임으로 여러분들 앞에 감히 선다. 東崇美術館의 招待에 感謝를 드린다.

1992년 5월 29일
李 雲 植

평론


                    상징적 서정주의
로도비꼬 지에루트
(산타안나 시립박물관장·이탈리아 미술평론가)

멀리서 보이는 하얗게 파여진 까라라의 대리석산들은 마치 바다로 흐르는 한줄기의 강물과도 같아 보인다. 그곳은 바로 옛부터 대리석을 캐내기 위해 싸워온 노동자들의 땀과 역사가 베어 있는 곳이다. 까라라의 채석장 주변에는 아직은 자연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이곳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조각가들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들중의 하나로 이곳 까라라를 찾은 한국조각가 이운식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오랜세월동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로, 초기에는(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말까지)주로 철조와 스텐레스로 조각을 했었고, 그 후로는 브론즈를 주 재료로 썻으며, 80년대부터는 대리석을 많이 다뤄 왔었다. 이 재료는 이곳 까라라산에서 돌을 채석하기위해 수년간을 체류했던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헨리무어(Henry Moore), 아르프(Arp), 노구치(Noguchi)등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수많은 조각가들이 애용해 왔던것으로 조각가로 하여금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영감과 감정, 사상등을 불어넣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시대의 메세지 역할을 다해왔다.
필자가 조각가 이운식을 알게된 것은 삐에트라(Pietrasanta)에 사는 한 친구를 통해서였다. 이곳은 피렌체와 피사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도시로, 조각가나 화가, 작가들이 많이 모여서 작품활동을 하는 곳이고, 또 서로 모여서 작가의 사상을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곳으로, '예술가촌'이라 불리는 장소이다. 포모도로(Arnaldo Pomodoro)를 비롯하여 피에트로 까셀라(Pietro Cascalla), 까레띠(Cianni Carretti), 과다뉴치 지지(Gnadagunucci Gigi), 보뗴로(Fernando Botero), 크누스텐(Knut Steen)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이곳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것만 보아도 이 도시가 얼마나 작품창작 활동이 활발한 곳인가를 짐작케 한다.
필자는 이미 간접적으로 이운식의 작품을 알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은 해를 거듭하면서, 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조형언어와 통일성을 구축하면서 매우 높은 경지에까지 이른것을 볼 수 있다. 구석구석에서 예술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곳 까라라는, 그가 관심있게 다뤄왔던 주제들, 즉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족'이나 '사랑' '애타주의'로 과거 동양예술의 교훈을 상기시키며 인간과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주제로한 그의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매우 적합한 장소라 생각된다. 이운식은 그의 작품의 시적인 형상을 통해, 단단한 대리석 덩어리들을 인간과 물체를 통합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승화하게 된다.
이운식이 보다 융통성있게 비중을 두고 있는, 그의 작품에 내재해 있는 '이성'(理性)과 '본질'(本質)에 관하여 살펴보면 완성된 그의 작품은 대체로 갈아서 광을 냈는데, 이는 그의 내부의 감정과 그가 추구하고 하는것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작품의 주제에 따라 각기 그 재료를 달리하면서, 인내를 요하는 많은 시간들을 작품제작을 위해 바친다. 그가 흔히 쓰는 재료로는 까라라산(産) 흰색 대리석이나 회색 대리석이 있고 때로는 분홍색의 포루투칼산 대리석을 선택하기도 한다. 필자는 어느날 우연히 그의 작업장 마당 한쪽에서, 숨쉬기를 기다리는 듯한,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를 본적이 있다. 돌 파편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면서 이 대리석 덩어리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인간과 산과의 싸움이 지금은 이 제작소에 옮겨져 계속되고 있다.
작가와 대리석은 그들만이 통하는 언어로 대화를 하는데 그러면서 싸움은 사랑이 되고, 돌의 작은 파편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의 작품은 점점 더 힘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은 완성된 후에야 그것을 보는 이들의 찬사를 불러 일으킨다. 이운식은 이 작품에 '가족'이란 이름을 주었다. 이 완성된 작품은 어디론가 옮겨질 것이며 그곳에서 작가자신에게 그토록 소중한 주제였던 '화합'이란 의미의 메세지를 보는 이들에게 전달해 줄 것이다.
하얗게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이곳 까라라의 대리석 산들은 매일 같이 일하는 그의 작업현장의 말없는 산중인이다. 그곳은 또한 수세기전부터 조각가들이 태어나서 일하고 또 죽는것을 지켜본 역사의 산증인이며, 과거에 순전히 인간의 노동에 의해 이루어진 채석작업에서, 오늘날에는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이 낳은 현대적인 기계로 인하여, 이곳의 대리석산들이 시장경제의 법칙에 이용당하여 마구 침입당하고 있는것을 지켜보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이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예술활동은 다행히도 우리들의 존경과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메달(medal)의 다른 한쪽면이라 할 수 있다.
이운식의 작품은 대체로 빛의 효과에 의해 더욱 그 섬세한 진가(眞價)를 발하는데, 그가 쏟는 작업에 대한 노력과 작품의 주제에 대한 깊은 연구는 돌이라는 재료에 대한 폭넓은 탐구덕분에 그의 작품을 다이나믹한 형태로 완성하게 한다. 예를 들어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서 광을 내고, 그 형태를 길게 변형시키고, 매우 단순화한 형태의 '고양이'는 마치 숨을 쉬고 있는듯한데, 이운식은 이 작품에 자연스러움과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의 다른 주제의 작품들도 재료와 작품전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덕분에 작가와 말없이 대화를 가능케하며, 작품내부에서 열정적이고 긴박한, 어떤것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초기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이루었던, 다이나믹하고(운동감있고), 예리한 느낌의 깡마른 인체들은 전후(戰後)의 불행했던 시절에 주로 제작된 것을이다. 요즘의 작품들은 그 성격이 매우 달라졌는데, 특히 대리석 작품일 경우 작품마다 이운식 자신이 그의 생을 살아오면서 깨닫게된 삶의 경험이 내재해 있다. '모성' '가족' '사랑'등 최초 작품의 주제들은 전 우주적인 테마로서,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감동'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의 일부를 표현한 것들로서 이는 과거에 우리가 겪었던 불행한 전쟁을 기억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증오하지 않고 이제는 평화의 기반위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도록 호소한다. 이는 또한 그의 작품을 대하는 우리의 내부에 '사랑'과 '우정'이라는 형태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모두가 동참하여 해결해야 하는 공동과제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결하고 통일성있는 조형언어로 일관해 왔으며 사회적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바로 이운식 자신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그가 극히 직감적인 예술적 언어로 제시하는 사회적 서정주의는 그가 지닌 개성의 총체요, 또한 전체적으로는 그의 작품에 완숙도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현실을 조각한 그의 작품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추구해 나가야 하는 길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의 작품의 이러한 현실에의 참여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1990. 11
번역 : 고종희(서양미술사진전공·피사대학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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