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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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관

작가 작품

<고래불 –멍때리는 전망대> 250x480xH360cm,painting on stainless steel 2021

경북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설치)

MONG-Over View 30x12xH60cm Painting on resin 2024

<멍-멍하다> 30x10xH23cm painting on resin 2023

젠틀-멍 20x18xH61cm Painting on resin 2024

현대인-無心히 걷다 70x70xH210cm Painting on stainless steel 2024

워킹 -멍 62x13xH60cm painting on Resin 2024

작가 프로필

배 수 관 BAE, Soo-Kwan

010-8844-9668
smile9668@daum.net

■ 학력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조각전공) 졸업
국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입체미술전공) 박사(수료)

■ 개인전 8회

■ 현재
(사)한국조각가협회, 대구현대미술가협회, 경북조각회, 경산조각가협회 회원

작가 노트

				멍, 비움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군중들로부터 격리될 겸 마음이 답답할 때면 바다나 산과 들로 혼자서 부단히도 돌아다녔다. 아내의 잔소리와 무기력한 자존심을 뒤로하고 원초적 자아로 돌아가 마음의 안식을 얻 고자 몸이 녹초가 되도록 걷고 또 걸었다. 이렇게나마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털어내는 가운데 시나 브로 샘 쏟는 작품 아이디어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수년간의 코로나라는 혼란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작업에 대한 에너지가 조금씩 차오르면서 명상에 대한 관심으로 “멍”시리즈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해변에서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거나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파노라믹 경관은 먹먹한 가슴을 시원하 게 뚫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이것은 정신적, 육체적 리셑(초기화) 상태에서 재충전이라는 신선한 경험 을 하게 되면서 인체의 가슴 부위나, 동물의 몸통에 구멍을 뚫는 조형적 상징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멍하다”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 비움”은 일정한 공간에 사람, 사물 따위를 들어 있지 아니하게 하는 “비다”의 형용사이다. 이러한
멍한 상태의 자기를 비우는 몰입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안정과 새로운 예술적 창조를 경험하게 된다. 몰입(沒入, flow)은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들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다. 몰입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는 에너지가 쏠리고, 완전히 참가해서 활동을 즐기는 상 태이다.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하였다.
자유로운 영혼의 바다를 유영하는 작가들은 고귀한 정신활동의 결과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멍 때리기는 마음을 비우는 명상의 시간은 충전의 시간으로서, 극적 몰입의 과정을 거쳐 예술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인 것이다.
미학 박사 홍준화는 “배수관의 작품 제작이 ‘생활의 일부로서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극복’ 할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멍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명상의 시간, 극적 몰입의 과정을 반복’ 할 뿐만 아니라 이들 과정을 작품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작가의 의식적이자 의도적 산물인 조각품들은 ‘멍―비움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헨리 무어가 작품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시도한 것과 같은 작가 적 의식의 반영이다. 그렇게 그는 작가적 조형물의 속을 비워가며 그 공허함을 의식으로 가득 찬 공 간으로 치환해나가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 20여 년 전부터 나는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점차 비중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예술의 사회적 기 능이나 인간과 자연(환경)이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에 관심이 많았다. 현대사회의 구성원들 중에서 나 의 존재가 어떻게 관계 지어지고 군중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성찰하면서 타자와의 통섭 에도 귀를 열게 되었다. 폐쇄된 작업장이 아닌 밖으로 열린 창조적 접속의 과정 속에서 특별한 감정 적 교류를 체험하면서 작업이 삶 자체이고 삶이 곧 작업이라는 모토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미술 형식으로 보면 특정 유파나 이즘에 경도되지 않고 자유롭게 나를 드러내고자 한다. 굳이 미술사 조의 형식을 빌리자면 최소한의 표현을 강조한 미니멀리즘, 대중 지향성의 팝아트의 경향을 보인다.
특정 이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나다운 본연의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시작된 현재의 ‘멍’ 시리즈는 우리의 삶에서 고요한 순간들을 담아내면서 그 를 통해 사색하고, 공감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멍’ 시리즈는 나에게 있어 삶의 활력을 주는 동시에 작업의 원천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2024 배수관

평론


                    배수관의 조각

― 멍의 작가적 조형 의식 ―

Ⅰ.
근본적으로 인간이 행하는 예술적인 제작적 행위는 지극히 의식적이자 의도적 구조를 지닌다. 작가 가 작품에 예술적이자 미적 의미를 부여함에 어떠한 작가적이자 제작적 의식과 의도를 반영하는가에 문제 삼는 이유도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의식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정신적 영역을 說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지적할 바는 의식이라는 주체가 인간의 편에 놓여 있는 만큼 의식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의식의 저편에 놓여 있는 의식의 객체, 즉 의식을 낳는 빌미를 제공하는 ‘현실―형식’으로서 세계 대상에 대한 매체가 문제 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인식이 세계와의 접촉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의식은 바로 이 세계라는 접촉 매체에 대한 작가적 수용을 동반한다. 그 과정에서 작 가의 의식은 작가적 의도를 수반하게 되고 그 의도가 접목된 의식이 작가에게 자리함과 동시에, 작가 는 그 의식을 바탕으로 해 작품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이들 과정을 동반하는 가운데 작가적 의식은 의식으로서 예술적인 眞 의미를 확립하는 것이다.
Ⅱ.
작가 배수관이 지향하는 작가적 세계이자 작품세계에 있어 ‘멍의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에 대해 ‘멍한 상태의 자기를 비우는 몰입의 과정 속에서 ……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 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몰입’의 과정이자 상태로 귀결짓는 작가적 의식은 예술적으로 큰 의 미를 내포한다. 문제는 이러한 작가적인 ‘의식의 흐름’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으로 대체되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멍의 사전적 의미가 그렇듯이 한편에서 보자면 예술적 의식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는’ 상태로 진척되는 것이다. 이는 예술적 활동이 ‘몹시 놀라거나 갑작스러 운 일을 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얼떨떨한’ 정신상태에서 비롯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가적 몰입과정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Ⅲ.
진정한 의미에서 ‘멍한 상태’는 의식의 집중에서 오는 것이 아닌 무의식적 진공상태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이유로 멍한 상태는 얼빠진 상태로 실재한다. 멍한 정신상태는 주어진 사실에 대한 실망과 낙담의 상태에서 비롯한다. 작가 스스로도 작가적 의도대로 그러한 정신적 과정이자 상태가 작가적 의식을 지배되기를 원한다. 작가적 의도대로 작가적 의식으로 멍한 상태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것이 다.06
[ 평론가 평론 ]
주목할 점은 이의 구현을 위해 작가는 작가적 의식이자 의도가 사적 이익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의식의 멍한 상태, 즉 의식의 무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적 정서가 작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전제한 바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의 의식은 멍한 무의식의 상태에 안착하기보 다는, 또한 그것이 사악한 의식으로 도치되어 작가적 의도가 반영되기 보다는 그 의식을 소실시켜 버 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작가 배수관은 괴체적 속성 부여를 특성으로 하는 조각이 란 예술적 제작을 구성함에 굳이 멍한 의식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과정을 전제로 작가는 스스로 작품이란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비우기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스스로 작가적인 사적 욕심이 배제된 공간을 구축해 나간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공공적인 조각적 특징을 채움이 아닌 비움의 공간으로 이끌어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구현해 나간다. 이렇게 작가는 조각의 예술적이자 제작적 수단을 통해 작가의 과한 사적 욕심을 버리고 그의 작가적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확장해 나가 결과적으로는 조각의 공공성을 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Ⅳ.
작가는 작품제작이 ‘생활의 일부로서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작가는 의도적으 로 그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극복’ 할 것을 지향한다. 작가적 무의식 상태인 ‘멍의 의미’ 또 한 이러한 이유로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멍한 의식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명상의 시간, 극적 몰입의 과정을 반복’ 할 뿐만 아니라 이들 과정을 작품제작 과정에 활용 하고 있다. 전제한 멍한 의식상태의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그의 작가적 의식은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 다. 그 결과 작가의 의식적이자 의도적 산물인 조각품들은 ‘멍―비움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헨리 무어가 작품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시도한 것과 같 은 작가적 의식의 반영이다. 그렇게 그는 작가적 조형물의 속을 비워가며 그 공허함을 의식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치환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작가적 조형의미를 확립해나가고 있는 주어진 작가적 의식은 ‘멍한 작가적 의식’을 통해 구멍 나 버린 조각공간을 채워가면서 스스로 조각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스스로 의식 을 소실해 가면서…….

2023. 11. 30. 홍준화
(예술·인문 공간 知剌, 美學·哲學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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