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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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기

작가 작품

Coram Deo

220x220 Egyptian Marble 2018

Dark moon

Guatemala Marble-300x120x450mm-2016

Eclipse

1800x700x1600mm-portugal marble-2015

Fiat Lux

120x120 Marble 2018

From All directions

Guatemala Marble- 450x200x300mm-2015

Rushing Wind#3

32x10x25cm_marble_2019

표면의 질감(갈아내기)

160x240cm-Italian marble-2017

The collapse of column

Italian Marble-250x250x700mm-2015

The comet

Portugal Markble-150x150x480mm-2016

Rushing wind#4

40x40x45cm marble 2019

작가 프로필

주요 전시 경력사항 및 수상
개인전
2019 서울 국제조각페스타2019 백진기 개인 부스전 예술의 전당(서울, 한국)
2019 백진기 초대전 ‘AWAKEN THE DAWN’ 갤러리 써포먼트 (서울,한국)
2019 안산국제아트페어2019 백진기 개인 부스초대전 안산문화의전당(안산,
한국)
2019 서울 모던아트쇼 10주년 백진기 개인 부스초대전 AT CENTER(서울,
한국)
2019 백진기 초대전 ‘Become a Rushing Wind’ 인사동마루갤러리 (서울,한국)
2018 백진기 개인전 ‘Sculptural Drawing’ _탐앤탐스 블랙압구정 (서울, 한국)
2018 서울 국제조각페스타2018 백진기 개인 부스전 예술의 전당(서울, 한국)
2017 백진기 초대전 ‘순백의 질서’ N갤러리(분당,한국)
2016 백진기 개인전 ‘AMOR FATI’ 키미아트 갤러리(서울,한국)
2013 백진기 개인 부스전 ‘LEGO SCULPTURE’
청주 국제아트페어2013(청주, 한국)
2012 백진기 개인전 ‘Amore, Quei Magnifici e Preziosi Ricordi( 사랑 그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얘기들_’전
Galleria dell’arte di Satura(사투라 아트갤러리) (제노바, 이탈리아)

단체전
2020 11회 서울 모던아트쇼 2020 한전아트센터 전관(서울)2020
2020 갤러리 두 기획전 세상을 비추는 프리즘 갤러리두(서울)
2020 예술공간 수애뇨339 개관 3주년 기획 “숨” 예술공간 수애뇨(서울)
2020 화랑미술제2020 코엑스 A1 빛갤러리(서울)
2020 타이베이 원아트페어 셔우드 호텔 (타이베이,대만)
2019 서울아트쇼 2019 코엑스A1 (서울)
2019 경인교육대학교 2019 미술교육과 교강사전 경인교대 지나지움(인천)
2019 아트경기2019 KAN 기획 '경기 아트로 물들다-오피스 뮤지엄’ 판교 세븐벤쳐밸리(판교)
2019 경인교육대학교 2019 미술교육과 교강사전 경인교대 지나지움(인천)
2019 갤러리 써포먼트 기획 ‘아트앤라이프’ 한전아트센터(서울)
2019 현대미술동인 SLIPPER ‘시각적 언어·언어적시각’ 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청주)
2019 춘천MBC 현대조각초대전 춘천 호반공원(춘천)
2019 서울미술협회 기획 시카고프로젝트 ‘Seoulism’ 주미시카고문화원(시카고,미국)
2019 한.중.일 문화교류전 ‘예상청도’ 중국 조소원 청도분원(청도,중국)
2019 마르텔로 조각회 제9회 정기전 ‘CUORE DI SCULTORE:조각가의 심장’ 안젤리미술관 (용인)
2019 서울 모던아트쇼2019 AT CENTER(서울)
2019 현대공간회 제60회 전시회 ‘경계, 너머’ 제주 더클라우드 호텔 (제주)
2019 갤러리 아우름 개관전 ‘Warm Heart 36.5’ 갤러리 아우름(광명)
2019 조형아트서울 PLAS2019 - Coex B1(서울)

2019 서울국제예술박람회 Seoul International Art Expo 2019 - Coex
B1(서울) 2019 갤러리 박영 작가공모전 ‘The Shift’ 갤러리박영-
파주출판도시(파주)
2019 기획전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사이’ 청작화랑 (서울)
2019 한국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기획전 ‘Visual Movement’ 갤러리 써포먼트 (서울)
2019 갤러리 써포먼트 신년기획전 ‘뭘해도 돼지’ 갤러리 써포먼트 (서울)
2019 오산시립미술관 기획 ‘Show Con’ 야외컨테이너 전 오산시립미술관(오산)
2018 서울아트쇼 Seoul ArtShow2018 코엑스 A1홀 (서울)
2018 마르텔로-삶이야기 연합전 ‘Stone & Sprits’ 앤갤러리(분당)
2018 모산 국제조각심포지엄2018 결과보고전 개화예술공원(보령)
2018 키미포유 15주년 기념전 ‘The Next Big Movement’ _키미아트(서울)
2018 현대공간회50주년 기념초대전_파주출반도시 지혜의 숲(서울)
2018 앤갤러리 기획 ‘ART FESTA’ _앤갤러리(서울)
2018 제 4회 조각그룹 대피소 기획전 ‘조각예찬’ _아트스페이스 그루브(서울)
2018 성동문화재단 기획 ‘눈이 번쩍! 왕십리’전 왕십리역사_ 비트플렉스(서울)
2018 조형아트서울 PLAS2018 COEX D홀(서울)
2018 서울시립대학교 개교100주년 기념조각전 서울시립대학교(서울)
2018 서울국제예술박람회(SIAE2018) 코엑스B2홀 (서울)
2017 키다리갤러리 신진작가초대전207 키다리갤러리(대구)
2017 앤 갤러리 상설 기획전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MVG라운지-본점, 잠실점(서울)
2017 한국 구상조각회 2017정기전 마포아트센터(서울)
2017 앤갤러리 기획 ‘힐링 앙상블’전 분당 서울대학병원(성남)
2017 아트경기 2017 깊고 짙은 마음 고양 벨라시타(일산)
2017 백진기 송유정 부부조각2인전 갤러리 아트리에(안양)
2017 춘천MBC ‘현대조각의 초대전’2017 춘천MBC 사옥 야외광장(춘천)
2017 조선일보 주최 아시아프2017 동대문디지털프라자(DDP) (서울)
2017 대교문화재단 국제조각시포지엄 역대수상작가전 -서울상명대학교 백년미래관(서울)
2017 조각그룹 대피소전 -코사스페이스(서울)
2017 BAMA 2017-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2017(부산)
2017 돌과 시간 그리고 아름다운 흔적- 마르텔로 조각회 삶이야기 조각회 52인 연합전(서울)
2017 신진작가초대전-서정아트센터(서울)
2017 뉴 드로잉전-장욱진미술관(양주)
2017 뉴 아티스트 수상작가전-인사아트프라자(서울)
2017 꿈을 마주치다 -갤러리 일호(서울)
2016 한국조각가협회 조각오감도전- 코사스페이스(서울)
2016 구상조각회전 - 성북동 아트스페이스 벤(서울)
2016 어포더블아트페어 대교문화재단 작가전 -동대문디자인프라자(서울)
2016 제2회 대피소 그룹전 -코사스페이스(서울)
2016 대교 국제조각 심포지엄 결과보고전 -상면대학교 백년미래관(서울)
2016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전 -천안 예술의 전당(천안)
2016 마르텔로 조각회 정기전- 봄, 조각, 향기 – 정문규미술관(안산)
2015 키미포유 ‘삶에서오는 숨결’전 –키미아트(서울)
2015 조각그룹 대피소전 – 코사스페이스(서울)
2015 한국조각가협회 소품전 - 선물 코사스페이스(서울)
2014 마르텔로 조각회 정기전-오마주 석기시대 인사갤러리(서울)
2014 치유-Recovery전 빨간벽돌갤러리 (서울)
2014 부산조각가협회주최 청년작가 초대전 ‘맥가이버’ 전 이연주갤러리 (부산)
2014 한국 현대조각 아카이브전 코사스페이스 (서울)
2013 청작화랑 선정작가전 ‘새로운 도약’전 (서울)
2013 그룹 ‘모드니’ 조각전 갤러리 엠(인사동, 서울)
국제전
2012 Groupo Modni x Korea Traditional Booth - Carrara art fair space(카라라,
이탈리아)

2012 La Mostra collettiva Per Hotel Bataccio - Hotel bataccio(몬티뇨소, 이탈리아)
2012 Groupo Modni - Aria gallery (피렌체, 이탈리아)
2012 ‘Carpe diem’ con 16 artisti internazionali a Carrara- Satura art gallery(제노바,
이탈리아)
2012 한국조각가협회 주최 ‘K-sculpture to the world, Korea now’전 (피에트라산타,
이탈리아)
2011 International art competition ‘Cesare Pavese’- Casa di Cesare Pavese (쿠네오,
이탈리아)
2010 재이 대한민국대사관 주최 한이 문화교류축전 ‘Suono del Cuore’ 조각전 (마싸,
이탈리아)
2010 ‘La bottega dell’arte’주최 국제 예술콩쿠르 ‘Fiore e l’aria’전 (아레쪼, 이탈리아)
외 다수
주요 수상경력
2019 춘천MBC 현대조각초대전 올해의 작품상
2019 서울미술협회 서울모던아트쇼 10주년 우수작가상
2018 보령 개화예술공원 모산국제조각심포지엄 선정작가
2017 대교국제조각심포지엄 현장감독 역임
2016 대교국제조각심포지엄 선정작가 / 작가우정상 수상
2016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부분 특선
2015 구상조각대전 특별상(매입상) 수상
2012 라 보테가 델 아르떼’주최 국제 예술콩쿠르 조각부분 대상. (아레쪼, 이탈리아)
작품소장) 롯데호텔 제주,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롯데호텔 이그제큐티브타워, 크라운해태
아트밸리, 분당 서울 대학교병원, 안성시청, 양구군청, 오산 시립미술관, (주)대교문화재단,
센토이박물관, 평창동 키미아트, 분당 앤갤러리, (주) 파라텍 본사사옥, (주)성민스포츠,성림기획,부산
삼정한의원 포함 국내외 개인소장 다수.

작가 노트

				2019 작가노트
Awaken the dawn. [새벽을 깨우다]

1.
나는 ‘인간이 개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현 세계에 내던져진 자’라는 표현처럼, 삶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왜 존재하는가)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불안감을 가진 채,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떤 특별한 계기로 생의 유한성을 체험하고, 결국 삶이란 것은 머지않아 끝나는 피할수
없는 과정이라는 한계상황 임을 자각하였다. 자의와 상관없이 세상에 놓여지고 떠나야하는
삶의 여정에서, 나는 무엇으로 삶의 가치를 증명할 수있는가? 나는 나의 의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허비되지 않을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 위에 있는 불안의 세계’로 부터의 탈주를
시도한 것이다.
2.
먼저 자각이 필요했다. 이는 ‘나는 무엇으로 증명되는 가’라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물음이다.
현재의 나는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예술을 하고 있는 나,
구체적으로 ‘조각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자’라고 정의 하였다. 즉, 예술적 행위,
조각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나타나는 예술세계의 양태가 나의 주체적 삶의 양태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매일매일 반복된 예술적 행위가 진전을 이루어 작가의 예술세계를 나타내어
주듯이, 미숙하고 불 완전한 현재의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노력하는 삶의 과정을
통해서 주체적인 자기실현으로 도달할 것이다.
이것이 무작정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내가, 흑암(Darkness)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스스로를
던질 차원의 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예술작품’은 스스로 결정
지어지는 창조적 행위의 반복을 통하여 얻어지는 결실이며, ‘예술적 행위’는 ‘나’라는 개별적
인간이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것은 피투성(被投性)의 존재가 가진 불안의 세계로부터 균열을 내는 행위인 셈이다.
3.

어둠으로부터 균열을 내어 빛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작가적 행위를 통한 삶의 주체적
자기실현 의지로써 새벽을 깨우리라는 공언을 하였다.
나의 예술활동의 주된 질료는 대리석이다. 나와 대리석은 상보적 투쟁행위를 일으키고,
그러한 시간들이 모여 작가의 세계를 만든다.
질료를 종속 시키고자 하는 나의 의지적 조각행위와 대리석의 사물로 존재 하려는 성질은
끊임없이 부딪혀 투쟁한다. 이러한 행위의 과정 속에서 작품의 질감과 굴곡을 만들어내고,
이것들은 작품의 형태가 되어 작품은 그 생명력을 얻는다.
대리석은 작가가 감당해내는 예술노동의 실체이며, 작가의 삶 속에서 끝없이 부딪치고
투쟁하며 전진하는 상보적 대립체이다.
예컨대, 시지프 신화에서 형벌을 받는 시지프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삶의 양태라면, 나에게
대리석은 시지프가 굴리며 올라가는 돌 덩어리와도 같은, 육중하지만 그것이 있음으로
의미가 부여되는 삶의 무게인 셈이다.
‘왜 이런 구별된 삶이 나에게 주어졌는가’의 답을 정상에서 찾기보다 돌덩어리에 밀리고
밀며 한 걸음씩 올라가는 과정 안에서 찾기로 한다. 혹여,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현재의 삶의 애착(amor fati)을 가지고 한 걸음 내딛어 본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결국, 나의 삶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다. 어두움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오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 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벽을 깨우리라’ 고 말하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삶의 주체성에 대한 표명이고 예술가의 자유의지이다.
작가노트 2019_ 새벽을 깨우다.

2018 작가노트
나의 조각작업은 ‘나’라는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와 그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끝임없는 실험과 탐구의 기록이다
나의 작가적 행위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에 대한 기록이며, 그 행위만이 나의
실존을 증명하고 있다.
정신적 사유와 육체적 노동이 반복되는 일상, 매우 몰입하여 아득하게 세상과 구별된 것
같은 하루를 보내는 삶.
때로는 감당해내기 어렵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번뇌로 인해 두려움에 휩싸여 매순간
삶의 기로에서 불안과 공존하는 삶.
하지만 그 현기증과 같은 불안감 조차도 현존하는 자유의 가능성이기에 현재의 꾸준한
움직임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이루고자 한다.
결국, 나에게서 조각은 내가 나의 삶의 능동적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의 표상인 것이다.
조각의 매체로서 강한 물성을 지닌 대리석이라는 존재는 젊은 작가인 본인에게 짊어
지워진 삶의 무게와도 같다.
그 존재(삶)와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 상호보완이 되기도하고, 그 본질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또한 그 안에서 삶의 애착(Amor fati) 또한 생겨난다.
이러한 삶의 과정을 통해 ‘자기실현’이 이루어지듯이, 작가로서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대리석은 작품이 되어 자기존재를 드러낸다
2. 대리석을 매개로한 행위의 중첩.

첫째로 표면에 무수히 반복하여 흡집을 내는 것, 혹은 흔적을 새기는 행위이다.
이러한 반복적 행위 속에서 돌에 새긴 상처의 흔적들은 제각기 다르고 고유하지만,
큰틀에서 질서와 규칙을 형성한 듯 보여지기도 한다.]
돌에 가해지는 조각적 행위(긁고, 파고, 갈아내는)와 돌의 물성이 만나는 충돌하는
지점에서 남겨진 흔적의 ‘중첩’이 일련의 규칙과 질서가 된다.
둘째로 돌의 파편(piece)이나 기본 단위로서의 조각(sculpture)을 집적, 배열하는 것이다.
조각과정 중, 덩어리(mass)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형태의 구현을 위해 껍데기로서
버려지는 파석(破石)들의 군집 (또는) 그 첫번째 시도이고, 둘째로는 매체에 대한 작가의
능동적 개입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기본단위를 집적 또는 배열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물성을 강조하는 최소주의와는 다르게, 주체인 작가가 주어진
조건에 개입하여 얻어낸 각기 고유한 조각(Piece, Sculpture)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커다란
형상이다.
마지막으로 조각적 드로잉(Sculptural Drawing).
‘조각가의 드로잉은 재료로 사용되는 매체의 물성탐구 로부터 출발하며, 필연적으로
메스(mass)를 조절한다’는 개념아래 제작되는,
본 작가의 조각적 드로잉(혹은 부조)이다. 대리석의 표면에 조형의 기본단위(점,선,면)를
조각기법을 통하여 중첩한다.
이것은 작가의 영감을 가장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포착해내는 작업으로 여기서 획득한
텍스쳐는 위의 두 작업방식의 바탕이 된다.
3.작품에 내재한 신앙적 모티프(Faith Motif).
작품 속에서 주요한 조형기호로 드러나는 원형은 시작과 끝점이 연결되어, 구분이
모호한 순환의 구조이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을 포괄한 모든 것에 대한 전지적관점의 영원성을 의미하고
있다.
삶 속의 그릇된 관념이나 속박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자유로 이르는 길. 영원을 얻는
구원으로 이르는 길은 작가인 내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적이자 안식이다.
‘Coram Deo’, 삶 속에 반복되는 무수한 과정과 매순간이 모여 완성으로 귀결되는 것.
보잘것 없고 미약한 것들이보여 숭고함에 도달하는 것. 구원에 이르러 진정한 안식을 찾는
길이다.
‘Fiat Lux’, 성경에 기록된 세상의 처음에 행하여진 행위 ‘빛이 있으라’. 나의 작가적 행보
또한 미약한 시작단계이나 그것이 작가로서 도달하고자 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인식이다.
“내가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고자 하는 바람처럼, 내 작품은 자신을 찾아 나가는 수단이고
방법이다. 
나의 작업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내 생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 어떠한 무엇으로 귀결된 것이 아니다.” (_작가노트 2016 발췌)

작가노트 2018 ‘실존적 삶의 주체로서의 나’

작가노트 2017 이것인가? 저것인가
내 존재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어떤 만족없이 결핍되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욕망한다. 최근의 나는 ‘내 삶은 어떤것인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수없이
질문하며 스스로 답하기 위하 여 대리석에 무수히 많은 흔적을 새기고 있다. 돌에 새긴
상처의 흔적들은 제각기 다르고 고유하지만 큰 틀에서 질서와 규칙성이 존재한다.
나는 내 삶에 불확실한 진행에서 오는 불안을 카오스(Caos)로 규정했다. 다만 절망으로
폄하하지 않고, 불완전한 내 존재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사고하며, 불안감은 결국 현 존하는 나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풀이하였다.
나는 대리석이라는 강한 물성을 가진 재료와 대면한다. 조각을 한다는 행위- 긁고 파고,
새기며 갈아내는 조각적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대리석의 본질과 부딪혀 규정되거나
계획한 형태가 아닌 충돌과정에 서 남겨진 행위의 흔적과 잔재만을 드러낸다.이것은 규정된
형태로의 완성보단 과정의 산물을 보여준다. 무질서한 공격적 행위들이 무수히 반복될 때
생겨나는 일련의 규칙들과 질서의 중첩은 과정 중 생겨난 우연적인 패턴(pattern)을
보여준다. 이러한 나의 꾸준한 움직임은 현재의 삶에 대한 나의 노력이 아직 오지않은
현재인 ‘미래’로 안내해 주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입체작과 평면 부조작으로 구성되며,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 이클립스(Eclipse) 그리고
불완전의 가능성(The possibilities of Imperfection)으로 키워드를 압축한다.
첫째, 혼돈으로부터의 질서(La Nouvelle Alliance)는 카오스 이론에 대한 담론이 담긴
1979년 프랑스 에서 발간된 자연과학서의 명제를 인용한 키워드이다. 대리석이라는 재료에
새기거나(Carving) 갈아내 는(Grinding)는 행위의 불규칙적이고 무수한 반복은 작가가
예측가능한 범주이거나 혹은 예상 하지 못 한 상처를 표면에 남기게 된다. 이 행위에서 본
작가는 조각적 행위에 집중하게되고 재료의 입자와 형태 의 불규칙적인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과정이 지난후, 새겨지고 남겨진 흔적들은 꽤나 일정한 질감과 패 턴으로 보여진다.
형태를 재현해내는 것이 아닌 조각적 행위의 과정이 결과가 되어지는 작업이다.
둘째로 내 작업속에서 이클립스(Eclipse)는 월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빛이 잃게 되는 것. 즉,
중요성 혹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것들이 빛을 잃거나 권한을 잃게 됨을 지칭하였다.
혼란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이 클립스를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 그것은
이미 규정 되어져 고정된 관념과 속박에 대한 종말. 예컨대 새벽이 오기전(Before dawn)의
짙은 어둠과 같으며, 새로움 혹은 시작이 도래함을 알리 는 전조이자 희망의 메타포이다.
마지막으로 불완전의 가능성(The possibilities of Imperfection)이다.
30대 중반의 현재를 보내는 본 작가는 결핍되고 불완전한 구축되지 않은 세계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 것 인가’ 라는 질문 속에는 ‘나는 작가로서의 삶이라는 과업(課業)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당연 히 늘 포함되어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조각적 행위은 질문 속의
답을 찾기 위한 부단한 연구과정이다. 지금 작가로써 보여주는 행위들, 사고를 선행하는
손의 움직임들과 재료와의 상보적(相補的) 투쟁들이 자기실현을 위한 과정이길 스스로
기대 해본다.

작가노트 2016 (키미아트 개인전-AMOR FATI)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_헤르만 헤세<데미안>
누군가 나에게 무슨 작품을 하는가? 물어보면 나는 대답하기 어렵다.

내 작업은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해도 될까? 내가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고자 하는 바람처럼, 내 작품은 자신을 찾아 나가는 수단이고 방법이다.
나의 작업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내 생각은
끊임없이 움직 이고 있지 어떠한 무엇으로 귀결된 것이 아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구상작업을 해왔었다. 기억이 머무는 정황적 장면의 구성과 감정의
스침을 간결화된 구상적 표현으로 드러내는 행위였다. 석산으로 뒤덮인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시간을 모르고 해오던 작 업은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나를 틀의 지배 안에 가두어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규제가 되어있었다. 나 는 자신을 가두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 위해 구상의 틀은 깨뜨리기로 하였다. 추상작품으로만 이루어진 전시를
준비하며 본디 조각이라 칭하는 근본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로 계획하였다. 물론 추상
조각만으로 다시 나를 속박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형(形)에 대한 저항이고
자유로움이고자 함이 있을 뿐이다.
조각(彫刻)하는 행위- 긁고(沠), 파고(掘), 새기는(刻) 원론적인 행위의 반복이다.
범주는 정하였으나, 결과는 예측되지 않는 작업. 과정에서 결과를 찾아내는 행위.

대상에게 물질적 공격을 가하여 생기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된 그로테스크, 혹은 완전히
날것의 상태도 아닌 접점을 만들어 내는 일련의 행위를 추구하였다.
본 전시 구성작들은 3가지의 주된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아상블라주(assemblage), Fiat Lux, 그리고 내면(Internal) 발현이다.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덩어리(mass)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형태의 구현을 위해
껍데기로서 버려 지는 파석(破石)들의 군집이다. 그 파석들은 형태구현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행위의 부산물이지만, 일련 의 행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과정 자체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 들에게 약간의 연마를 가하거나 지지대를 삽입하여 곧추세워 공간을 점유하게 하는
행위. 쓰임새가 없다고 파기된 유약한 잔재들이 모여 한 공간의 주체가 되는 일, 하나씩
둘러보면 그 하나하나가 각기 유 일한 고유의 형태임을 알게 되는 일. 소소한 일련의
과정들이 뭉쳐서 나란 존재를 만들어내고 그 모든 과 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아내는 삶의 과정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Fiat lux et facta est lux" (Genesis 1:03)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라틴어 바이블 첫 장에 쓰인 태초에 가장 처음 생겨나는 일에 대한 기록이다.
Fiat lux는 탄생이며, 창조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반면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눈 최초의
행위이기도 하다. 혼돈(caos)으로부터 탈피하며 새로운 창조를, 시작을 꿈꾸는 염원이기도
하며, 밝음(陽과) 어둠(陰) 의 구분으로 시작된 형이상학적 이분법과 위계질서로부터
저항하고자하는 대상의 단어로 나에게 인식되 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내면(Internal-)의 발현이다. 작품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 내면에
가장 어두운 그 림자로 감춰 두었던, 타인의 시선에 휘둘려지지 않은 온전한 나의 모습과
대면하는 일. 내, 외적으로도 성숙한 자기를 완성하고자 하는 일.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궁극적 목표이다.
그리고 Amor Fati.
매 순간 찾아오는 선택과 결정과 경험이 모여 만들어낸 지금의 나,
지금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낼 미래의 나. 그 모든 운명이야 말로 존재의 증명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유가 있으며, 가치가 있다.

작가의 글 - 작가노트 중 작품에 대한 설명
1) Fiat Lux(빛이 있으라)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빛의 출현은 종교적,철학적,문화적,물리적으로 해석되어지는 창조의 근원적 사건이다.
작품 Fiat Lux는 라틴어로 빛이 있으라!는 명령어로 ‘fiat lux et facta est lux(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창세기 1:02)’를 인용한 명제이다.
작품은 빛의 생성과 확산하는 추상적 형상을 통하여 창조와 생성의 근원적 의미와 희망의
빛이 끝없이 퍼져나가길 염원 한다.
이것은 희망의 도래, 회복의 메타포이다.
작품은 대리석 표면에 점을 새겨넣는 것으로 출발하며, 무수한 점의 중첩을 통해 질감과
운동감을 획득한다.
작품에 가하여지는 작가의 예술적 노동행위는 작가의 삶의 의지를 드러내며, 생성 이전의
혼돈(Caos)상태로 작가는 작가와 질료(matter)사이의 상보적 투쟁 행위로 규정한다.

작가와 질료간의 행위과정 속에서 형태와 질감은 결정되어지며, 작품은 행위의 산물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2) Rushing Wind#3 Portugal matble 2019
작품 Rushing Wind Series 는 바람의 움직임과 세월의 흔적으로 자연풍화 된 암석의
Tafoni(풍화)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연작이다.
태평양에 불어온 작은 미풍이 아메리카 대륙에 토네이도를 불러 일으키듯이, 삶의 연속된
작은 움직임들이 존재의 양태(실존)을 만들어 낸다는 의지를 담았다.
작품은 자연의 생동감이 물질에 새겨져 암석의 풍화작용이 일어나듯이, 작가의 고유하고
중첩된 유기적인 움직임들이 대리석에 새겨져, 작품의 질감과 굴곡을 만들어내고, 이것들을
작품의 형태가 되어 작품은 그 생명력을 얻는다.

작품은 작가의 고유한 기법으로 석재위에 유기적인 표현을 만들어 나간다.
단단한 대리석을 재료로 매끈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조형되는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과 사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듯 부서지고 깨진 조각들은 고뇌하고
노력했던 흔적이 되어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작품의 형상을 만든다.
풍화 현상을 겪은 암석이 고유한 형태로 재 탄생되어도 여전히 암석의 본성을 가지고 존재
하듯이, 작가의 사유체계로 시작된 작품이 작가의 손에 의해 그 형태를 결정 되어도
대리석은 변하지 않는 본질적 색상과 무늬의 고결함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작가와
물질 간의 상호작용의 흔적이고, 삶에 대한 영향력과 거센 의지를 작업 방식에 담고자한
작가의 의도이다.

1) Fiat Lux Series
Light is the root of all life
Appearance of light is the fundamental event of creation that is interpreted religiously,
philosophically, culturally and physically.

The title "Fiat Lux" is a Latin word meaning "let there be light." It is from 'fiat lux et facta lux'
a
command in Genesis 1: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Genesis 1:3
The work wishes that the fundamental meaning of creation and formation and the* light of
hope

will spread endlessly through abstract shapes that generate and diffuse light.
This is the advent of hope and the metaphor of recovery.
The work begins by inserting a point on the marble surface, and obtains texture and
motility
through the superposition of innumerable dots.
The artist's artistic labor practices in his work reveal The artist's will to live, and in the state
of
Chaos before creation, The artist defines the acts of constant struggle between the artist
and the
material.
Form and texture are determined in the course of the act between The artist and the
matte, and
the work gains vitality as a product of the act.
2) Rushing Wind Series
The 'Rushing Wind series' show the will of the small movements in life that create the
mode of
existence of a person, just as a small breeze blowing into the Pacific could cause
tornadoes on
the Americas.
The overlapping and repeated sculptural act create the texture and curve of the work, and
these
become a form of art, gaining its vitality.

평론


                    2020 기획전 “숨” 서문 중 발췌
백진기는 ‘고고학적 미래’라는 독특한 순환구조를 선보인다. 생의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바람, 우주를 향해 삶을 펼치려는 충만한 의지를 경험할 수 있다. 그 두 가지 욕망 사이에
맴도는 건강한, 역동적 운율과 긴장감을 통해 생의 미래적 충만함과 구원에의 바람, 희구를
노래한다. 매일처럼 깎고 새기고 갈고 다듬은 결과물들은 살아 꿈틀거리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망과 염원을 새기듯 담아낸 진정성 넘치는 땀과 숨의 결정체이자, 흡사
구도적 결과물이다.
작품 속 원심적이면서 구심적인 움직임은 오로지 돌만을 고집하며 지난 시간동안 돌과
동고동락해온 작가의 애정과 고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백진기는 돌의 숨결과 성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늘 조심스럽다. 어루만지듯 따라 들어가고 그들의 화답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정한 방향성과 함께 맺힘을 보이는 이유다. 때론 칼로 나무를 쳐내듯
단호하게 끊어 치고 내리친다. 마치 흑백의 강렬한 목판화를 보는 듯 칼맛나는 표면질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과 반듯한 사각형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부조작업은 우주의 질서와
기운, 신성과 종교적 절대 미감, 숭고미 등을 연상케 한다.
백진기의 절제된, 다소 금욕적인 작업충동은 태고적 은하계의 흐름을 현재적/미래적으로
풀어내며 삶의 신비한 기운을 경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는 벽에 걸린 기하학적 형태의
부조작업과 함께 바닥에 놓인 입체 작업도 선보인다. 대체로 물 흐르듯 유려한
부조작업과는 달리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된 듯,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듯 호흡이 제법
칼칼하다. 흡사 산호초를 보는 듯 태고로부터 이어진 시간의 집적과 축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서문 중 발췌. 독립 큐레이터 박천남)


2016- 개인전 서문
조각적 속박, 또는 해방 : 백진기의 근작들
“모든 미술이 견고함과 수직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라면 이는 형태 자체가 중력에 맞서는
싸움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결속된 전체인 하나, 즉 게슈탈트로서 온전히 남아있으려는
투쟁이다” (Robert Morris, 1966)
과거에 로버트 모리스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상에서 미술(특히 조각)의 존재 조건으로
견고함과 수직성을 거론한 적이 있다. 중력에 굴복하여 바닥에 누워있는 것, 깔려있는 것은
그 자체 인간의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주목의 대상이 되려면, 그리고 유의미한 어떤
것이 되려면 조각은 수직으로 일으켜 세워져야 한다. 물론 그 수직의 상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려면 조각은 충분히 견고하고 단단해야 한다. 견고하게 곧추 선 조각, 그것은
직립하여 보행하는 인간의 지각조건에도 부합했다. 이것을 미술사가나 비평가들은
게슈탈트Gestalt 또는 형태form라고 부른다. 이렇게 게슈탈트나 형태를 추구하는 조각을
우리는 ‘형태로서의 조각sculpture as a form’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형태로서의 조각’에 동의할 수 없는 작가들이 있다. 그 견고한 수직의 형태가
지나치게 완전무결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보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형태로서의 조각’이 너무 일찍 ‘완성’의 상태에 도달하여 그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작가들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작가들은
게슈탈트와 형태를 긍정하기보다는 부정하는 쪽에서 반-형태(anti-form) 또는
비정형(formless)의 조각을 실천한다. “작품은 내가 나를 찾아나가는 수단이고 방법”이며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내 생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 어떠한 무엇으로 귀결된
것이 아니다”(작업노트, 2016)라는 견지에서 작업하는 백진기 역시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둥의 붕괴>(2015)에서 이 작가는 수직의 단단한 대리석 기둥의 물성을 공격하여, 또는
그 부피를 덜어냄으로써 여전히 견고하고 수직적이나 더 이상 ‘형태’라고 단언할 수 없는
어떤 상태를 얻어냈다. 그런가하면 대리석보다 좀 더 단단한 현무암 기둥이 ‘균열의 상태’에
처한 <균열, 그림자>(2016)는 수직으로 높이 쌓아올린 (기둥의)외형이 붕괴에 직면해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작업들은 ‘외형’, 곧 형태의 ‘풍만한 안정감’을 훼손하면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기둥의 본래적 기능 자체를 무력화한다. 그것은 이 작가에게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온 어떤 세계가 균열, 또는 붕괴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흥미로운 것은
균열, 붕괴의 상태에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것들이 기둥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완전히 파괴된 그로테스크, 또는 완전 날 것의 상태는
아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백진기의 작업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틀을 유지하면서 그
틀의 무게를 상당히 덜어내고 그럼으로써 그 틀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방향에서 육면체(입방체)를 파 들어간 <모든 방향들로부터
From all directions>(2015)에서 “육면체의 모든 면은 숨겨진 부분 없이 드러나 있고 안과
밖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뱉어내는”(작업노트, 2016) 상태에 있다. 새기고 파내어
얻은 여백, 구멍들은 그것이 꽉 채워져 있을 때 상상할 수 없었던 내부와 외부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로부터 새로운 (재)구축이 가능할지 모른다.
<월식>(2015)이 “새로운 빛의 도래를 알리는 전조”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백진기의
근작들에는 확실히 돈 애즈Dawn Ades가 다다Dada를 두고 언급했던 “재구축이라는 위대한
과제에 선행하는 파괴적이지만 정화하는 떨림(cleansing convulsion)”이 존재한다.
그런데 낡은 세계의 붕괴에 뒤따른 (재)구축은 어떻게 가능할까? 조각 작업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부산물들, 작은 돌들을 아상블라주assemblage 형태로 결합한 <빛이 있으라
Fiat lux>(2016)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버려진 작은
돌들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지지대를 삽입하여 일으켜 세웠다. 이것은 바닥에 수평으로
깔려 있는 돌들에 수직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부분들을 연결하여 ‘전체’를 얻는
구축construction 작업이다. 갖가지 형태, 갖가지 크기, 갖가지 색채의 돌 1000개는 일정한
높이에서 서로 맞물려 ‘원형’이라는 전체형태를 형성한다. 이 경우 돌들(부분들)을 하나하나
세워 맞물리게 하는 작업은 매 순간 예외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돌의 크기나 형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면서 서로 맞물리게 하여 전체 형상을 얻는
작업은 매 순간 다소간 즉흥적이고 임기웅변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전체 형상(원형)는
예정되어 있으나 그 부분들을 연결하여 그 전체 형상을 얻는 과정은 언제나 예측불가인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 예정되어 있으나 살아서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순간순간을 채워
나가야 하는 인간의 존재 양태(실존)에 대한 은유에 해당한다.
삶의 매 순간에 달성한 성취들, 의미들이 언제나 잠정적이고 연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빛이
있으라>에서 매 순간, 그리고 마침내 달성된 형상들은 잠정적이고 연약해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조각작품들처럼 수직성을 지니지만 중력을 이겨내고 굳건히 서있는
것처럼 보이기보다는 무중력 상태에서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매끈한 전체 형상(원형)을

구현하지만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기보다는 일시적, 잠정적 결합체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몸이 관여하는 모든 방향에서 점을 찍듯 새김질(carving)을 반복하여 얻어낸 형상들-
(2015), (2015), <빛과 그림자>(2016)-은 주어진 조건에
주체/작가가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얻어낸 최선의 형상들이다. 그것은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인간이 지금 자기 삶에 부여하는 ‘삶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그것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곧 (가혹한)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칭할 만한 것이다. 글 앞부분에
나는 백진기의 작업을 반-형태(anti-form) 또는 비-정형(formless)의 조각으로 지칭했는데
지금 다시 보면 그의 조각에서 형태(form)에 덧붙을 접두어(접미어)로는 반(反anti-)이나 비(
非-less)보다는 재(再re-), 간(間inter-), 또는 변(變trans-) 같은 것이 좀 더 적절한 것 같다.
홍지석(미술비평, 단국대 연구교수) 2016 ‘AMOR FAT’전시 비평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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