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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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훈

작가 작품

Bubble Dog

2019-Stainless Steel-215X100X185

Adagio

2011-Stainless Steel-65X45X165

Bubble Dog Head(R,B)

2017-Stainless Steel-27X25X35

Bubble Man

2015-Stainless Steel-350X170X250

Bubble Story

2016-Stainless Steel

Don Quixote

2019-Stainless Steel-215X155X250

Flying Horse

2017-Stainless Steel-240X120X240

Human Bike

2019-Stainless Steel-218X90X110

Red Bubble(Bule)

2012-Stainless Steel-380X150X200

Whith Bubble

2017-Stainless Steel-140X90X240

Bubble Man

Stainless Steel-350x170x250cm
Courtyard by Marriott Hotel, Taiwan.2015

Bubble Story

Stainless Steel,화강석-750x620x550cm
강동 펠리스.2017

Flying Horse

Stainless Steel-560x560x360cm

생명의 나무

Stainless Steel-500x400x470cm-대구 나사렛병원,2018

신인류 돈키호테

Stainless Steel-530x230x450cm
강동 고덕아르테온,2019

작가 프로필

작가 노트

								

평론


                    오동훈의 조각 

버블맨, 비누거품놀이에서 환영놀이로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오동훈은 어린아이들의 비누거품 놀이에서 현재 자신의 조각을 위한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스트로를 이용해 통 속에 담긴 비누거품을 불면 크고 작은 구형이 응집된 형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불면 그렇게 응집돼 있던 거품이 분리되면서 비로소 온전한 원형을 이루며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표면에 무지개의 영롱한 빛깔을 머금은 채 잠시잠깐 허공을 떠다니다가 이내 터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영롱한 빛깔이 다시 보고 싶어서 스트로를 연신 불어댄다.
아이들에게 그건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놀이가 재미가 아닌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이가 아닌 그 놀이를 지켜보는 어른 쪽이다. 어린아이는 현상에 빠지고 어른은 의미를 찾는다. 도대체 저 현상은 무슨 의미이지(무슨 시추에이션?). 그래서 비누거품 놀이가 유년의 추억으로 각인되는 것도, 뒤늦은 상실감을 일깨워주는 것도 어른 쪽이다. 현상이 충분히 의미화 된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 비누거품 놀이는 환상놀이다. 자기 눈앞에 환상을 창조하고 환상을 호출하는 놀이이다(예술은 환상/환영을 창조하는 기술이다).
어린아이는 투명하게 빛나는 영롱한 빛깔이 자꾸 보고 싶다. 어른이 보기에 그건 꼭 꿈을 눈앞에 호출하는 것만 같다. 비누거품은 꼭 꿈같다. 비현실적으로 아롱거리는 것도 그렇고, 현실보다 더 찬란한 것도 그렇고, 잠시잠깐 유혹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이 그렇다. 짐짓 심각하게 말하자면 인생무상의 전언을 그림으로 옮겨 그린 바니타스 정물화에 연동되고, 꿈과 생시, 나비와 자기의 경계를 넘나드는(비눗방울 속에 내가 들어있는) 장자몽의 현대판 버전 같다. 삶이 꼭 그런 것이 아닐까. 삶이 혹 꿈은 아닐까. 아니면 꿈이 없는 삶은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혹 정작 삶을 살게 하는 힘이며 삶을 견인하는 계기가 꿈은 아닐까. 아마도 작가는 어린아이들의 비누거품 놀이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버블맨이 탄생했다. 버블맨은 그 출신성분이 비누거품에서 온 것인 만큼 비누거품에서 그 생리며 현상이 얻어지는 것이어야 했다. 이를테면 비누거품처럼 그 최소단위가 원형이어야 한다. 비누거품처럼 가벼워야 하고, 투명해야하고, 외부환경을 되비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통 속의 비누거품처럼 원형과 원형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구조는 반복적이어야 하고, 확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형태는 비정형적이고 비선형적이어야 한다. 비누거품이 아닌, 비누거품을 조각으로 옮긴 것인 만큼 최소한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무중력성, 투명성, 반영성, 반복성, 확장성, 비정형성 혹은 비선형성이, 그리고 비누거품이 만들어내는 형태치고 결정적인 형태가 따로 없다는 점에서 우연성과 가변성이 버블맨이 갖추어야 할 성질이며 덕목으로서 채택되었다.
실제로 작가의 조각에서 그대로 발견되고 확인되는 이 성질들은 현저하게 현대적이다. 작가의 조각은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구를 자르고 붙여서 원형을 만든다. 크고 작은 원형들이 덧붙여지고 어우러지고 확장되면서 이러저런 형태를 만든다. 원하는 형태가 만들어지고 나면 표면을 광택 처리해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본래의 성질 이를테면 마치 거울과도 같은 반영효과를 살린다거나, 표면을 우레탄 도색으로 마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를 보면 원형이라는 기본형에도 불구하고 같은 형상이 하나도 없다. 원형이라는 최소단위세포에서 확장된 것(시작된 것)이라는 점 말고는 형태들이 다 다르다. 주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에디션도 없다. 작가는 3차원 입체화면을 구현하는데 남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구현된 도면 그대로를 입체로 옮긴다. 이런 프로세스를 생각하면 같은 형상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지만 실제 제작과정에서 일일이 수작업을 거치는 것인 만큼 같은 형상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똑같다는 혹은 유사하다는 느낌은 줄 수가 있겠다.
이런 느낌 즉 00같다는 느낌은 작가의 조각에서 중요한데 특히 담론의 층위에서 그렇다. 이미 버블맨 자체가 그렇다. 버블맨이라는 사람은 실제로는 없다. 가상 인격체다. 그건 비누거품이 만들어낸 우연한 형상이 마치 사람처럼 보인다는 착상이 불러일으키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가 만든 조각이 다 그렇다.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도, 개처럼 보이는 형상도, 비상하는 말처럼 보이는 형상도 알고 보면 다 사물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일 뿐 사물대상 자체가 아니다. 자기동일성을 흉내 내고 모방하고 차용하는 것일 뿐 결코 자기동일성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자기동일성이 뭔가. 제도가 개별주체를 호명하는 방법이고 지목하는 방식이다. 제도의 관성이다. 그리고 예술은 태생적으로 반제도적인 실천논리에서 그 존재이유를 찾는다. 말하자면 제도의 자기동일성의 논리에 대해 비동일성의 논리를 들이대고, 차이의 논리를 대질시키고, 제도의 관성을 흔들어놓는다. 여하한 경우에도 다름 아닌 바로 그것으로 환원되지는 않는 것들은 존재하기 마련인 것이고, 그 존재방식은 존중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작가는 자기동일성의 논리를 차용하고 제도의 관성을 전유하면서 차이를 생성시킨다. 마치 비누거품이 우연한 형상을 생성시키듯(예술은 차이의 기술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것들은 분명 눈앞에 실재하는 실물에도 불구하고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데자뷔들이고, 저기 저곳에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신기루들이고, 현실과 비현실, 실상과 허상의 경계에서 출몰한 유령들이다. 더욱이 비누거품에서 온 것이라는 출신성분이 이런 비현실성을 강화시켜준다. 이런 비현실적인 것들을 출몰시키는 것, 영락없는 실재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유의 형태도 색깔도 없는 것들, 사이와 틈새, 경계와 행간에 거주하는 것들을 되불러내는 것, 비가시적인 것들을 가시의 층위로 되불러내는 것이 중요하다(예술은 형태 없는 것들에게 형태를 주는 기술이다).
그 형태들은 가볍다. 금속으로 만든 것이어서 실제로는 가벼울 리 없지만 작가의 감각이 가볍게 만든다.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표면에 광택을 내면 거울이 된다. 그 광택을 극단까지 밀고 가다 보면 거울은 불현듯 현실의 확장이 되고 실재의 연장이 된다. 그래서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있는 것 같다. 거울 속엔 반영된 현실이 들어있다. 현실과 반영된 현실이 하나의 현실 속에 공존하고 있는 현실이 현실화된다. 있을 수 없는 현실이 현실화된다. 여기서 현실은 비현실로 전화된다. 바로 현실과 비현실이 맞물린 사이와 틈새, 경계와 행간이 열리는 순간이다. 아마도 작가의 조각은 바로 그 순간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고, 머잖아 그 순간에 맞닥트릴 것이다. 작가의 조각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감각적인 층위에서)도 현대적으로 보이는 것(담론의 층위에서)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 형태들이 마치 비누거품처럼 가볍게 떠있으면서 무중력 상태를 부유하는 것 같다. 그 무중력 상태가 또 다른 제도의 관성인 중력에 저항하는 것 같고 반하는 것 같다. 제도의 관성으로서의 중력은 체제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고 지속하려는 제도의 항상성이며 현실원칙을 말한다. 여기에 비누거품이 만든 형상이 대질되고 작가가 만든 조각이 비교된다. 비현실적인, 중력에 반하는, 부유하는, 환영적인, 비선형적인, 우연한, 가변적인, 아롱거리는, 그리고 덧없는. 조각이 이렇게까지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물질이 이렇게까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The Bubble Man,
From Soap Bubbles to Phantasmal Games

KHO Chunghwan ∙ Critic

OH Donghoon gained inspiration for his present oeuvre of sculptures from children playing with soap bubbles. When blowing out soap bubbles from a container using a straw. globular shapes of various sizes show their condensed forms. And when blowing them out into the void. only then the condensed bubbles form perfect spheres. and disperse into the open air. These perfect spherical bubbles, cast with the brilliant colors of the rainbow spectrum, hover midair momentarily until they leave without a trace with a pop!. And that is when the children begin to eagerly blow on their straws, hungry for the resplendent colors of the bubbles.

For children engaging in bubble play, it is possible that this is nothing more or less than a fun pastime which piques their curiosities. However, the bubble play comes toward as a signification, not a mere pastime, to the adult watching over the children. While children become infatuated by the form, adults try to find the meaning. What does that form signify (what kind of a situation is this)? For adults, therefore, the bubble play comes as a childhood recollection, which also brings along a belated sense of loss. This occurs only after the forms have been sufficiently signified. Through an adult's eye, the bubble play is a fantasy play. It is a play in which fantasy is created before the eye, a play in which fantasy is summoned (and art is a technique which creates fantasy/phantasm).
The child persistently desires to see the resplendent colors which radiate so transparently. For the adult, this seems to be an act of summoning a dream before the eyes. Soap bubbles are akin to dreams they hover quixotically, are so much more splendid than the reality, and disappear after a fleeting moment of seduction. To reiterate more soberly, it is as if the bubbles are interlocked with the vanitas still life paintings which have transferred the message of the frailty of human life onto canvas, or the contemporary version of The Butterfly Dream by Zhuangzi, which vacillates (as if being captured in a bubble) between dream and reality, the butterfly and the dreams. Is this not exactly what life is? Is life not a dream? Or, how would one be able to endure life without any dreams? Are dreams not the force which provides momentum for life, the reason for the propulsion of life? It is probable that the artist had these thoughts in mind whilst watching over children playing with bubbles.

This is how the Bubble Man was created. Because the Bubble Man originated from bubble, its physiology and form had to also be derived from bubbles. For example, its smallest unit has to be spherical, just like the bubbles. It has to be as light and transparent as bubbles, and must possess the property of reflecting the external environment. And just like soap bubbles in a container, the structure adjoining sphere to sphere must be repetitive as well as expansive. Its form must be spontaneous and nonlinear. Thou호 not made of actual bubbles, it must at least give off such impression as it is the transference of bubbles to sculptural form. Thus, the Bubble Man must adopt qualities (or perhaps virtues) of zero gravity, transparency, reflectivity, repetition, expansion, spontaneity, nonlinearity, and the contingency and variability resulting from the lack of definitive from despite being formed by bubbles.

In actuality, these properties discovered and confirmed in the artist's sculptures are strikingly modern. The artist's sculptures are made circular by cutting and putting together stainless steel spheres. Both big and small spheres are adjoined, and expanded to create various forms. Once the desired form is achieved, the surface is either glossed in order to emphasize the mirror-like reflectivity of the stainless steel medium, or finished with urethanc paint. When viewing the completed sculpture, despite the basic form having derived from spheres, no two shapes are exactly the same. Apart from the fact that they all have expanded from the primitive cell of a sphere, all forms are distinctve. Because the artist does not use casts, no editions exist. He displays exceptional technique in materializing three-dimensional images, and is able to directly transfer from blueprints to sculptures. Though it may seem perfectly feasible to generate identical forms by way of this process, when considering the manual labor during its actual production, it is impossible in principle. But it is possible to give off the feeling of identicalness or similarity.

This feeling, this vague impression of similarity, is significant in the artist's sculptures, and especially within the level of discourse. The Bubble Man is already significant in this sense. The Bubble Man does not exist as a real life - he is a virtual human being. 'It' is nothing more than an illusion brought about by the idea that a coincidental form made of bubbles resembles a human being. All of the artist's sculptures are like that. Sculptures that resemble human beings, dogs, and soaring horses all reconfirm preconceptions towards each subject, but are not the actual subjects themselves. They mimic, imitate, and borrow from self-identities, but do not revert to them.

Then what is self-identity? It is a means to point out, a method used by institutions to specify individual subjects. It is an institutional inertia (resistance to change). And the arts innately searches for its reason for being in the midst of anti-institutional, practical logic. It thrusts the logic of disidentification in the face of the logic of self-identity, confronts the logic of disparity, and disturbs the institution's inertia. In any case, things which don't revert to nothing other than the specified 'subjets' indeed exist, and their ways of being should be respected. The artist generates disparity by borrowing from the logic of self-identity and by appropriating institutional inertia-just like the bubbles that generate coincidental forms (the arts is a technique of distinction).

As an overstatement, despite these 'things' being actual, tangible, real-life 'things,' they are nothing more than apparitions. They are ghosts that haunt on the boundaries between truth and illusion, reality and unreality; they are deja vus, mirages which may just exist way over there. Moreover, the component of origin being from bubbles only strengthens their unreality. It is important to make these unrealistic things appear, these things which, despite surely existing in real life, do not possess inherent color nor form. It is also important to bring back these said 'things' which reside in the chasm and rift, boundary and inherence, to bring invsible things back to the realm of visibility (the arts is a means to give form to the formless).

The forms are buoyant. Of course, they are not actually buoyant because these things are made of metal, but the artist's touch makes them so. And once luster is added onto the surface of stainless steel, it becomes a mirror. When the surface is sheened to an extreme, the mirror becomes an expansion of reality and an existence. It makes it seems like nothing is there; it seems like nothing is there, but there is. The mirror contains a reflection of reality. The single reality of reality and mirrored reality co-existing together is realized. An impossible reality is reality is realized. And here, reality is converted to unreality. It is the moment when the chasm and rift, boundary and inherence of the engagement between reality and unreality open. It is probable that the artist's sculptures are aiming precisely for that moment, and will run into that moment before long. This is the reason why the artist's sculptures come across as charming(within the realm sensation) and modernistic (within the level of discourse).

The forms seem to float lightly like bubbles, and drift in zero gravity. Such weightlessness seems to resist against and contradick with gravity, inertia of a different kind of institution. Gravity, an institutional inertia, maintains a system's stability and is the homeostasis of the system which opts to retain such stability; it speaks of the reality principle. Thus, these forms created by bubbles are confronted and the artist's sculptures compared. Unrealistic, anti-gravity, drifting, phantasmal, nonlinear, accidental, labile, hovering, and transient. It is surprising that a sculpture should become so weightless. It is surprising that matter should disappear to such an extent.




















구(球)의 반복과 집적(集積 accumulation)으로 조형화 한
인체에 대한 표현의 확장

-Expansion of human body, executed by repetition

and accumulation of sphere-

글/ 정재헌 월간 파워코리아 기자

Part 1

인체 작업에 관심이 많아 흙을 만지고 붙이며 다듬는 과정에서 나오는 형태에 매력을 느꼈던 그는 대학시절 경험과 아이디어의 부재로 항상 목마름의 예술을 펼쳤다. 이후 다양한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접목하면서 예술의 폭을 넓혔고, 대학원 과정에서 좀 더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고민으로 새로운 시도에 도전할 수 있었다. 여러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용접을 배웠던 경험과 정확한 치수와 형태의 구조적 이해를 돕기 위해 3D프로그램을 독학했던 것 역시, 그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조형적 이해와 폭을 넓히는데 도움을 줬다. 이를 통해 공간, 입체, 조형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시작됐고,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Oh was interested in working with human body. He was attracted, while studying at university, to the shapers of clay being made. But he was always thirsty for ideas and experiments. He started to broaden the scope of his work by nuderstanding the properties of materials, and tried something new while he was doing a graduate course. He learned Welding in order to summit his works to various open exhibitions and taught himself a 3D programme to grasp the precise measurements and structural understandings of the form. These experiences hugely affected his artworks and helped him to understand about space, three dimension and sculpture and finally he knew what he wanted to create.

Part 2

하루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비눗방울의 모습을 보고 서로 붙어져 있다가 터지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무한한 확장성으로 특정지어 지지 않는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에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곧바로 인체에 관심이 많던 그에게 ‘ Bubble man’을 창작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고, 지금의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이미 정통구상의 르네상스 시절은 끝났다고 생각하여, 같은 주제의 재해석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그는 비눗방울에서 얻은 영감으로 Bubble man을 통한 인체의 새로운 표현을 탐구했다.

One day, Oh happened to watch the children on a playground having fun with soap bubbles that were sticking, departing, and spreading each other without any particular forms and this inspired him.
He came up with the idea ‘Bubble Man’ and it became his major work ever since. He thought that the authentic Renaissance Style conception had been already played out and the reinterpretation of the same material was much needed. So he experimented with new forms and expressions about a human body through ‘Bubble Man’.

Part 3

이는 작가 본인의 욕망을 표현한 작품으로, 스텐레스 스틸소재의 구를 자르고 붙이는 등
용접술을 사용한 철조용접 조각 작품이다. 단순한 감각으로 이어 붙이는 것이 아닌 컴퓨터를이용한 3D프로그램을 통해 계산하고 계획해 정확한 자리를 잡아줌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높였다. 또한, 이렇게 잇고 붙이면서 비눗방울이 하늘로 날아가는 무한한 확장성에 대한
표현으로 스텐레스의 한계를 뛰어넘어 재해석에 대한 성공적인 작품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즉, 잇고 붙이면서 소재와 재료의 반복을 통해 능동적인 조형적 효과로 그의 작품을 설명할수 있다. 우연보다는 계획적이고 작위적인 작품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후에는 오
히려 계획적이지 않는 미학의 일반적 성질을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치밀한
조형적 탐색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완벽한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고 본다.

His works were made of stainless still balls cut and attached by welding and this
explains Oh’s desire. He increased its completeness with accurate measures so that
each object can be place at the right place using a 3D programme. He developed his idea to overcome the limitation of stainless still so that the bubbles can expand limitlessly into the space. In other words, Oh’s idea of human body and beyond can be actualized by linking, attaching and repeating of the objects, and this can be expressed via direct and active three dimensional sculptures. They are meant to be
completed rather in systematic and deliberate process, however they are seen as if
they are unintentional at all when the work is done. And yet, he did a minute study
on the objects in the process, and this made his works more thorough.

Part 4

오동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체에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동작을 모티브로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의 역동성을 통해 꿈틀거리는 자신의 욕망을 세상 밖으로 던져 비눗방울
처럼 생성되고 사라지는 모든 행위의 연속작업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작업을 통해 작가 스스로 발산하고 싶은 예술적 감흥과 표현법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또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반복적인 고민을 통해 작품의 방향성에 대한 고뇌에 열정적인 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시대의 예술가다.
한편, 젊은 작가로서 드물게 작품을 인정받아 AHAF HK 2015(Asia Gallery Hotel Art Fair Hong Kong 2015)에 작품을 출품하게 되어, 지금까지 그의 예술적 표현법에 대한 이번 세계적 관심으로 국내 유망작가의 반열에 오르며 또 한 번의 변화와 발전을 준비하고 있다.

Oh said, by way of experiment on a body’s various movements, that his work is about continuous works of all actions that are born and disappeared like raindrops
whose wriggling desire was thrown away. Oh communicates with his audience through his artistic inspirations and expressions and as he considers carefully about the works he is going to make next, he is an ongoing artist of our age. He is participating in AHAF HK 2015.
In recognition of his art works from the world, Oh became an artist of great promise and he is preparing once more for change and progress.





































수동적인 조형물이 적극적인 확장으로 존재감을 입증하다
“구(球)의 변형과 확장에서 정(靜)과 동(動)의 속성 지닌 인간형으로 확장하다”

분열하여 인간형태가 된 구(球)들, 인간의 속성을 모방하기까지 진화과정
금속용접 조각가 오동훈 작가의 작품을 이루는 8할은 ‘사람’과 ‘구형’이다. 대부분의 전통적 구상예술이 인간의 아름다움 요소들을 다양한 실물로 재현하고 설득하던 방법론적 고뇌에서 출발하는데, 오 작가의 작품관은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를 만나는 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은 오 작가의 작품에서 ‘확장성’이 지닌 의의가 큰 이유를 설명해 준다. 기본 양감을 이룬 뒤 성형하는 흙과 여러 경성 재료들을 거쳐, 떼어내고 붙이는 새로운 수단인 금속용접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원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것으로 인체 형상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균형이 잘 잡힌 미인을 컴퓨터 미인이라 부르던 시대에, 오 작가는 3D프로그램을 배워 조형물의 입체적인 속성과 치수, 균형요소를 투시하며 자로 잰 듯 정확한 측정으로 도면을 만들어 형상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을 확장해 보여주기 위해, 오 작가의 구(球)형들은 세로로 배열되듯 매달려 시각적인 설명을 함과 동시에 질감과 무게감을 금속의 차가운 촉감으로 전해주었다. 오 작가는 첫 조각전을 연 이래 15년 간 꾸준히 조형효과가 큰 야외조각에 집중해 온 바 있다. 시리즈에서는 인간미보다는 도형의 조합과 연결로 인간의 속성 표현을 상징하고 있는데, “인체의 재현보다는 인간이 지닌 성격이나 문화, 행동방식에 대한 상징을 넣고자 했다”고 설명하며 “여기에는 키네틱 모빌의 특징을 담았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인내심을 갖고 살아가며 느림의 미학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관객이 작품을 움직이며 관람할 수 있게 하는 시리즈로 완성했다. 이 느림요소들은 섣부르게 낚싯줄에 달아 움직이게 하거나, 바람에 휘둘리는 일 없이 잘 짜인 금속의 탈을 쓰고 굳건하게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일정한 배율로 디자인되어 확대되거나 축소된 형상의 배열은, 중력의 영향으로 수동적인 의미를 갖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품 안에서 인위성과 인간의 자연성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오 작가는 자신의 소중한 오브제들을 보다 자유로운 영역에 두었다. 인간의 움직임 요소나 성향을 금속으로 도치시킨 작품들에서는 빽빽하게 배열되었지만 한편으로 인간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빈 공간에 본래 가졌던 원의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2차원적인 원의 성격을 유지한 채 자신의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지 재차 묻는 듯 토막 난 코일 형태, 그리고 원 안에서 조형 가능한 직선의 모임인 별 같은 도형의 형태, 이들은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균형과 정형에서는 완벽하지만, 언젠가 구의 형태를 깨고 새로운 포지션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태에 대한 구성은 현대 문명의 도움을 받았지만, 분자 구조의 디지털 초상을 재현하듯 비인간적인 부분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아이들의 비눗방울 놀이에서 본 구형의 신기한 확장과 변형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구형과 비눗방울의 공통점을 발견하자 더욱 신기한 반복적 조합이 시작되었다. 인체의 감수성을 인체의 역동적 요소를 재현하는데 활용하게 된 것이다. 구의 분열과 반복은 인간의 사지를 이루고 허공으로 확장해 가는 꿈을 조형하게 되었다. 그러한 조합으로 만든 휴머노이드인 , 다양한 분자 구조를 닮도록 배치된 구형들이 안드로이드 형상으로 적극적인 동적 요소와 확장성을 보여주는 은 전신의 움직임을 포착한 듯한 <너에게 간다>에서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인체의 재해석을 담고 있다. 구형은 부드러운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비눗방울의 속성을 빌려와 보편적 설득력을 갖고 시작된 친근함이라는 옷을 입게 된다. 입체 조형물이 사람을 닮아 갈수록 선, 각보다는 곡선을 닮는 경향이 있는데, 비록 제작과정에서 재료의 절단과 용접의 노고는 날카로웠을지언정, 그 땀방울을 숨기려는 노력이 물성 자체의 둥글둥글 고유한 속성으로 잘 덮여 보는 사람에게 친근한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 작가가 인간의 디지털 데생을 조각으로 만든 것보다 이 시리즈에서 휴머니즘을 느꼈다는 감상자들이 많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속성표현에서 인간의 형상을 조각하는 방식의 새로운 개념일 수 있고, 시각적으로 진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동적 요소를 멈춘 상태에서 표현한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오 작가의 작품들이 그동안 천천히, 느리게, 때로는 소통을 청하고자 확장 가능하되 정적인 속성을 유지한 채 진화하여 버블 인간이라는 신인류 탄생을 이루었기에 그 표현은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 정재헌

Passive sculpture proves its presence on active expanding
From transformation and expansion of spheres to stillness and dynamism of human
Sculptor Donghoon Oh

Arranging spheres to express human characteristics
The theme of metal weld sculptor Donghoon Oh is about human and sphere. While many plastic artists start at thinking of how to express, Oh starts at meeting the materials for expression. This means that Oh sees the expandability of the material he chooses. He makes basic shape with soil and various solid materials and applies metal weld. He then carries out cutting and attaching. As the preparation stage, Oh uses 3D programs to design and measure the work precisely. In order to express the invisible gravity of the work, Oh lays the spheres vertically to emphasize metallic texture, weights and visual effects. Since the first solo exhibition, Oh has mainly created works for outdoor installment. In the Adagio Series, Oh symbolizes the nature of human through connection and combination of the figure to express people’s personalities, culture and behavior rather than the body shape itself. It contains the features of kinetic mobile in which Oh wish to deliver a message to people to live slow and patient. For this reason, Oh made the work movable so that people can physically engage with the work. The certain scale of the spheres in arrangement shows the two sides of the human nature: artificiality and naturality. Oh also arranges the spheres in various layout such as coils and plane figures and sees the possibility of creating new arrangement: repeatable combination of spheres and (soap) bubbles - inspired by children’s playing with bubbles. Oh reproduces the elements of sentimentality being turned to dynamism. The division and repetition of the spheres forms the limbs that dreams of expanding themselves towards the air. As a result, Oh created ‘Bubble Man’. The spheres arranged as if they are a molecular structure in the work ‘Red Bubble’ shows active dynamic elements and expandability. It contains reinterpretation of warm and joyful human body like his other work ‘Going To You’. The spheres have gentle symbolism and give friendliness to appreciators. Oh cuts and welds the materials with sharpness but the round shape of the sphere and the properties of the materials make people warm. Oh’s style and conception can be seen as new and advanced in terms of expressing the nature of human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expressionism of stillness in his works. Because this is the theme of Bubble Man with which Oh wants to communicate with people in a slow pace.






충돌과 확장
대구미술관 이계영 학예사

오동훈의 버블맨은 비누거품을 단위형태로 삼아 넘어질 듯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나 움직이는 동물의 모습으로 생명력과 동세를 드러낸다. 동심을 자극하는 거품, 움직이는 사람과 동물의 친근한 형상이지만 정작 작품은 기이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비누거품은 비정형이며 무게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 오히려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보인다. 또한 대기의 흐름에 따라 모양을 바꿔가며 빠른 속도로 바람이 불거나 거의 불지 않는 잠잠한 대기 속에서도 거품은 제 페이스로 공중을 유영한다. 작가는 이러한 비누거품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 그래서 버블맨은 육중한 무게감을 상상하게 하며 표면은 차갑고 형태는 불변의 것으로 보인다. 버블과 스테인리스 스틸의 이질적인 조합은 충돌의 기운을 발산하기에 어린아이의 악몽 같고, 팀 버튼의 영화 같다.

작가는 자신이 조율하고 제어할 수 있는 조건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초기작에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과 엄격함이 작품의 물성과 조형성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버블맨 시리즈에서도 계속 된다. 언뜻 보기에 형상과 색채가 달라지고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고 치밀한 설계가 전제된다는 점은 유사하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정한 비례를 고려하여 버블의 크기를 결정하고, 그 크기에 정확하게 맞는 연결부위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정밀함을 감추고 고정불변의 형태를 유연하고 가변적인 것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을 통해 충돌의 에너지를 작품 내부에서 외부로 꺼내어 확장시키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확장을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블맨의 구성요소로 사용되었던 버블이 (2017)과 (2017)에서는 오브제와 분리되어 존재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버블만이 아니라 2D 영상으로도 버블이 등장한다. 작가는 버블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의 물성을 덜어내고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작품의 내부에서 외부로, 그리고 작품에서 분리되어 공간으로 확장하면서 충돌은 다른 밀도와 성격의 에너지를 얻는다. 내재율이 외형율로 바뀌면서 자율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버블맨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오동훈, 조각에서 역설과 아이러니
경주 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2018.5.29.-7.8

오동훈 조각가는 아장아장 귀엽게 걷는 강아지나 뒷발로 힘차게 치닫는 말 혹은 질주하는 사람의 모습 등을 비눗방울의 확장성과 연결성에 착안하여 만든 크고 작은 스테인리스의 원형 구슬들을 이용해 형상화시킨다. 사람에서부터 동물 그리고 바이크 같은 도구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우이든 특유의 움직임과 리듬감을 부여해 경쾌하고도 명랑한 성격의 상징물로 받아들이게 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모빌이나 키네틱 아트에서는 조각 작품이 실제로 움직이도록 고안된다. 모빌처럼 공중에 매달거나 키네틱아트의 경우 기계적 동력장치가 추가되어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오동훈의 조각에서 느끼는 경쾌한 움직임은 그런 물리적인 성질의 동작이 아니라 순전히 시각적으로 정서적으로 오는 감정상의 흥분이다. 그것은 조각자체의 구성이나 형태에서 비롯되는 가시적인 효과이다. 조각을 대하는 사람에게 시간의 연속성과 상승하는 움직임 같은 감각을 자극하는데 사실 중력을 가진 견고한 물체에서 이러한 경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동세를 강조한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지만 이것이 오동훈 조각이 주는 큰 매력이다.
실제로 움직이는 조각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이탈리아 미래주의 조각가 보치오니는 공간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사람의 동작과 시간의 연속성을 주조하고자 시도했었다. 그 뒤로 조각은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중력의 무게감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형태로 자유를 지향해왔다. 오동훈의 조각 역시 중력의 무게나 견고함이 주는 안정감 대신 약동하는 동세를 추구하는데 그렇게 보이게 하는 요인은 일차적으로 대상을 메스로 재현하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그는 모티프의 대상들을 둥근 공 모양의 구체들로 이어서 전체 형상을 조직한다. 크고 작은 구체들은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구상적이기 보다 추상적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러나 대상이 암시하는 주제는 곧 파악이 가능한 일종의 상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그 주제들이 움직이는 형태의 사람이라든가 우리가 이용하는 탈것, 또는 친숙한 동물들 따위다. 모두 동세를 강조하기 좋은 포즈로 재현되므로 활기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인상적인 캐릭터인 〈버블맨 Bubble man〉은 앞서 미래주의 조각의 현대적인 후예라고 해도 되겠다. 점증하며 상승하는 형태가 탄산수 청량음료에서 발포하는 기포가 연상되는데다 햇빛을 반사하는 스테인리스의 재질감에서 느껴지는 촉각적인 감각이 일조를 더하고 있다. 〈Bubble Dog〉 역시 그의 대표적인 동물 모티프 조각으로서 어린 시절 강아지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동심을 자극한다. 이런 형상들이 모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비눗방울의 이미지에서 착안한 것이라 하는데 이렇듯 덧없는 이미지를 지속성이 강한 금속성 재료로 고착시켜놓은 자체에 또한 역설적 아이러니가 있다. 이런 조각이 대형화된 채 야외조각으로 환경 속에 설치되었을 경우 그때 마주하는 효과는 신기루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오동훈의 조각은 설치장소에 따라 매우 다른 인상을 제공한다. 넓은 공간에서 대기 속에 서있는 그의 조각 ‘말’을 보면 동글동글한 방울 형태들의 사이로 빛을 투과시켜 투명하게 사라질 듯 보인다. 말의 존재는 조각의 크기도 중력의 무게감도 덜어버린 채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고조된다. 검은색 우레탄 도장은 이러한 착각을 제어하고 날아가듯 부유하는 조각을 지상에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네오 팝아트적인 색채와 정형적인 모듈 단위의 구슬형태는 결과적으로 환원과 수렴과 확장과 연속성을 반복하며 상반된 두 가지 속성의 긴장 안에 놓이게 한다.

김영동(미술평론가)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대구문화재단 이사
버블로 빚어낸 설레는 꿈의 확장
빨간 말에 올라탄 돈키호테, 창 대신 거대한 빨대를 들었다. 온몸을 들썩이는 품세가 한껏 들떠 있는 기분은 짐작케 한다. 그런데 모양세가 영 불안하다. 땅에 꽂아 세운 스트로 창이 아니었다면, 금방이라도 공중에 떠오를 듯 가벼워 보인다. 마치 뭉글뭉글 거품으로 빚은 듯하다.
조각가 오동훈의 ‘버블맨(Bubble Man)’시리즈 중 [신인류-돈키호테] 작품이다.

옛날의 돈키호테가 풍차에 맞섰던 것처럼, 오동훈의 돈키호테는 경주 예술의전당에 마주섰다. 올해 경주 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에 초대돼 제작된 작품이다. 오동훈 조각가는 고향인 경주에 터를 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신인류-돈키호테]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신라시대 기마상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신라의 기마상이 여유로움과 호젓함을 동시에 지녔다면, 돈키호테 역시 인생의 허무함과 도전 의지를 표상한다. 겉으론 어리석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꿈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열정의 소중함은 소설 [돈키호테]의 빼놓을 수 없는 교훈이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도시 경주의 상징으로 돈키호테 모티브를 새롭게 해석한 점이 더욱 돋보인다. 영원한 꿈의 도시 경주와 딱 안성맞춤이다.

오 작가의 [신인류-돈키호테]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빨대다. 빨대는 비누 거품을 내는 아주 긴요한 도구다. 아마도 꿈속을 헤매듯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좇는 돈키호테 캐릭터를 비누거품 비유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버블맨’ 시리즈의 탄생 비화와도 관련이 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비눗방울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며 불현 듯 작품의 아이디어를 포착했다. 아이의 입김으로 빨대에서 빠져나온 비누 거품은 바람을 만나 예기치 않은 형태의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창조적 영감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인생은 꿈같은 무대 위 한바탕 연극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터져 없어지는 거품처럼. 인생은 한낱 꿈의 한 조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정해진 무대에서 주인공 놀이, 그것은 나의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나, 오동훈 작품의 은유적 표현도 그 연장선이다. 같은 배우가 배역의 성격에 따라 자유자재로 제 몸을 바꿔 나가듯, 주어진 환경에 따라 쉼 없이 새롭게 적응하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오 작가는 평소 친근한 이미지의 형상들을 동적인 느낌으로 즐겨 표현한다. 아주 선명한 색채 감각을 자랑하는 작품의 표면 재질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우레탄 도장을 한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도색된 자동차의 재질과 같다고 보면 된다. 특히 최대한 부드러운 느낌을 연출하려고 애쓴다. 흔히 ‘미러(mirror)처리’라고 불리는 마감 처리로 거울 표면처럼 마무리하는 견고함이 놀랍다. 이러한 치밀함은 기획 단계부터 발휘된다.
기본 아이디어 스케치가 나오면, 곧바로 컴퓨터 3차원(3D) 프로그램으로 구체적인 세부 작업에 들어간다. 그 대상은 사람, 강아지, 말 등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로부터 오토바이처럼 다양한 대상을 망라한다.
“ 비눗방울이 허공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의 인생사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것들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데자뷰이고, 저만큼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신기루들이며, 현실과 비현실이나 실상과 허상의 경계에서 출몰한 형상들입니다.
입체 조형물이 사람이나 동물을 닮아 갈수록 직선과 각보다는 곡선을 닮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록 재료를 절단하고 용접하는 제작 과정에서 다소 거칠어질 수 있겠으나, 숨겨진 노력을 물성 자체의 내재된 고유한 속성을 둥글둥글하게 표현합니다. 이는 보는 사람에게 친근함과 휴머니즘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것이든 그의 비눗방울을 만나면 전혀 색다른 은유적 주인공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비현실적 외형의 형태감이 압권이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라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처럼 오 작가는 ‘형태의 완결성’에 집중한다. 처음은 3D 프로그램을 이용한 아이디어 스케치와 정확한 도면 아래 각각의 구성 요소들을 주문 제작하고, 최종 연결과 조립은 용접으로 이어 붙인 후 연마와 광택 과정을 거쳐 도장 순서로 마무리 한다. 작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할 자신만의 작품 제작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완비한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정을 그가 직접 관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 기질은 남다른 프로 근성이자 경쟁력이다.

오 작가의 작품이 지닌 두드러진 특성을 꼽아보라면, ‘구(球), 버블, 모듈화, 확장성, 컬러’등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크기의 구(球)를 활용해 기본적인 도형을 형성하고 있으며, 구의 집적 혹은 이완의 공간 균형미를 적절하게 조율해 특유의 동세를 만들어 낸다. 모티브로 삼은 비눗방울이 지닌 가벼움이나 부풀려진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감성적인 율동감도 연출된다. 크고 작은 구체들이 서로 이어지거나 확장돼 제각각의 형상이 완성된다. 마지막 단계의 색체과정은 최대한 간결성과 단순미를 추구한다. 주로 단색으로 몸체를 구성하되, 머리나 팔과 다리 등에 다른 색감으로 포인트를 주어 긴장감과 집중적인 비주얼을 이끌어낸다.
금속성이 지닌 재질감은 다소 차갑다는 첫인상을 전한다. 구상적인 성격의 작품임에도 과감한 은유적 표현으로 감상자 입장에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둥글둥글한 방울 형태들의 조합이 마치 모든 생명들의 유전자 혹은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 오 작가만의 이색적인 작품 특성들로 인해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그의 고향마을 입구에도 대형 작품이 1점 세워졌다. 시골 동네에 보기 드문 이 조형물은 마을 사람들에겐 색다르고 즐거운 볼거리가 됐다. 어릴 적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에 또 다른 꿈을 샘솟게 한 셈이다.
누가 뭐래도 오 작가의 자품이 지닌 1순위 매력은 꿈의 창고라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꿈은 희망이다. 지난 기억과 추억에 잠들었던 설레는 꿈을 깨워준다. 삶의 또 다른 생동감을 자아내는 버블맨의 행차를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미술 작품은 어렵고 부담스럽다는 경직된 선입견을 일순간에 무장 해제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일까. 최근에 많은 기획전과 아트페어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반기 11월 서울 청담동 갤러리PICI에서도 개인전이 잡혀 있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경영연구소소장 김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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