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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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작가 작품

1_Invisible coexistence

48x60x15cm_aluminum, urethane paint_2017

2_Invisible coexistence

47x44x18cm_aluminum, urethane paint_2017

3_Invisible coexistence

29x138x29cm_resin, wood, urethane paint_2017_

4_Relative boundary

각 90x40cm_반투명아크릴, 아크릴거울_2017

5_Reflection

boxes_170x110cm_acrylic mirror_2017

6_Relative boundary

53x49cm_ 스테인레스스틸, 알루미늄에도색_2018

7_Relative boundary

Installation view_2018

8_Relative boundary

각 38x84cm_ 스테인레스스틸(슈퍼미러), 알루미늄에 도색_2018

9_Relative boundary

100x178x42cm_ 철에도색_2018

10_Relative boundary

120x90cm_스테인레스스틸(슈퍼미러), 알루미늄에 도색_2019

11_flat and deep

exhibition view_2020

작가 프로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 학사
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 조각전공 석사, 밀라노, 이태리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조소전공 겸임교수
개인전
2020 flat & deep, 비디 갤러리, 서울
2018 관점의 유희, 갤러리 너트, 서울
2017 Possibility - beyond the spectrum, SORaC gallery, 도쿄, 일본
2014 Polylandscape, 셀로아트 갤러리, 서울
2013 Polylandscape, 갤러리 코사, 서울
2인전
2020 담다, 드로잉룸 갤러리, 서울
그룹전
2019 기획공모전 <1920 Douz>, 이정아 갤러리, 서울
2019 젊은작가기획초대전 , 리빈 갤러리, 부산
2018 선정작가 공모전 , 갤러리 엘르, 서울
2018 아트경기 2018, 판교 아브뉴브랑 외, 경기도
2018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18,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7 THE SOLAR PANEL ART SERIES, TOA / Anomalie Art Club, 베를린, 독일
2017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여수세계박람회장 D홀, 여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17,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5 컨테이노마드(container+nomad)프로젝트_고고!박스뮤지엄, 광교호수공원, 수원
2015 아시안 하이웨이, 석당미술관, 부산
아트페어
2019 유니온아트페어, S팩토리, 서울
2019 Harbour Art Fair 2019, 마르코폴로홍콩호텔, 홍콩
2018 KIAF2018 ART SEOUL, 코엑스 A&B홀(갤러리나우), 서울
2018 광저우국제아트페어,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전시관C, 광저우, 중국
2016 Art Fair Sapporo, 삿포로, 일본
기관선정
2018 용인문화재단 전문예술지원사업 시각예술부분 선정
2015 경기문화재단 별별예술프로젝트 선정

작가 노트

				평평하고도 깊은 _ 혼재된 차원의 경험

유 리
본다(seeing)는 것은 지각하는 과정을 동반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인 오감은 모두 지각의 과정을 동반하지만 유독 시각에만 관련하여 ‘시지각‘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난 걸 보면 우리가 살아 가면서 무의식의 세계인 꿈속에서 조차 한시도 멈출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일 거다. 이러한 우리의 시지각은 개인이 속한 시대와 문화 그리고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현재 우리는 범람하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아 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시지각
작용은 둔감 해져만 감을 느낀다.
우연히 드로잉북에 그려진 육면체 내부의 선 하나를 지우고 움직여 보며 그 선 하나의 미미한
움직임만으로도 우리의 지각이 얼마나 예민하게 작용하는지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 작은 변화에
대상의 안과 밖이 전복되고 앞, 뒤가 모호해지며 마치 다른 대상을 보는 것 같았던 ‘익숙한 것에 대한
낯선 경험’은 「Relative Boundary」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대상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때 굉장히 습관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마치
우리의 감각체계에 절대적 경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고정된 시각에 의해 대상을 동일한
방식으로 지각하는 것에 대해 작품을 통해서 대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들을
드러냄으로써 시지각을 건드리고 유동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지각에 대한 관심으로 2015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기하하적 형태에 부분적으로 ‘거울‘이라는
매체를 병치시키는 작업은 평면과 입체 / 추상과 구상 / 기하학적 이미지와 실제가 공존하는 혼재된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러한 내 작업은 형식상의 변화를 거듭했지만 항상 두 개의 세계에 경계에
머무르며 가변적 특성을 보여왔다.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동일한 개체들의 내부를 변형한다거나 두 개
이상의 형태들이 결합되어 ‘경계영역’을 공유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부의 미미한 선의 변화, 작품과 대면하는 대상에 의해 변형되는 다양한
이미지를 생산한다. 나는 이렇듯 유사성의 상태 속에서 변형되어 있는 형태들을 통해 관람자들이
시각적 유희를 즐기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는 경험을 유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나의 작업들은 나의 주된 관심사인 상반된 세계의 공존, 즉 주체와 타자의 포용적 관계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실험이자 시각적 결과물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혼재된 차원으로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시지각을 환기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작업에 임한다. 작업에 시각적 유희를
경험케 할 가능성들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며 고정된 시선으로 보았던 대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 내부의
그 절대적 경계에 대해 조금은 더 유연하게 바라보고 사고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평론


                    상대적 보기로부터 획득된 관대함

유가은(미술이론)

유리의 작업은 1960-70년대 미니멀리즘 미술과 비교해볼 만하다. 우선 겉보기에 그의 작품은 형태적
측면에서 기하학을 사용하여 명확하고 차갑고 이성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색면들과 광이 나는 거울
부분이 구성적으로 결합되면서 작품은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사물처럼 조용하게 스스로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유리의 작품은 물질적 형식으로서의 자신의 미(美)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반면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거울 부분은 주변 환경과 관람자를 비추는데 그 모습은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똑바로 보일 때도 있고, 찌그러지나 굴절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로써 유리의 작품은
명확하고 기하학적인 자신의 모습 속에 불분명하고 구체적인 주변 공간을 담아내게 된다. 이것은 오직
‘나’를 나타내기 위해, 나만 바라봐주기를 원하며 시작되었지만 관객이라는 타자와 공존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힘든 미니멀리즘 미술과 닮았다.
미니멀리즘과 유사한 맥락에서, 유리의 작품은 ‘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모던하지만 관객과 같은
다른 존재를 필수적으로 수반한다는 점에서는 포스트모던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양면적이다.
그러나 유리의 작품과 미니멀리즘은 작품의 의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니멀리즘이 자기지시성, 즉
작품이 자기 자신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면 유리의 작품은 처음부터 다른 존재를 함께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작품은 자기 내부에 환영적 공간을 발생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평면으로 계획된다.(반면 미니멀리즘은 환영성의 제거를 위해 일부러 입체만
다루었다.) 그리고 작품의 거울 부분에서 관객들이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유리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다.
아주 이성적이고 추상적인 자신 속에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현상적이고 실제적인 다른 무언가를
담아내는 그의 작품의 이런 점은 나로부터 타자로 나아가는 인간의 삶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자기만
아는 유아의 존재로 세상에 나와 사회화 되면서 점점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고려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차 관대해진다.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더 많으며, 따라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는 것을 인식한다. 물론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을 수용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리의 작품처럼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담는 것은 우리가 관대함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이 세상을 조화롭게 살아가는 한 방법일 수
있다.
작가 유리는 작품에서 선 하나를 지움으로써 작품의 기하학적 형태가 모호해지고, 거울 부분에 다양한
모습들이 투영되어 관객들이 자신의 관점에 따라 유희를 즐기기를 원했다. 만약 그의 작품을 ‘나’라는
한 인간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이것은 마치 단단한 나의 한 부분을 툭 허물어냄으로써 나를
유동화시키고 결국 타자를 수용하는 것과 유사할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항상 고통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 타인들과 그들의 다른 생각들을
수용하는 것은 그만큼 나를 덜어내고 내 것을 양보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의
유희”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 유리는 그것을 즐겁고 흥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와
타자의 관계라는 인간의 본질적이고도 심각할 수 있는 삶의 문제를 그는 힘을 조금 빼고 긍정적으로
다루려 한다. 그래서 작가 유리가 느끼는 ‘타인들’이란 호기심과 즐거움인 듯하다. 타인들은 비록 나를
모호하고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을 새로운 가능성과 흥미로운 존재들로 보려 하는 것
같다.
유리의 작업은 다양성, 상대성, 타인에 대한 수용과 인정,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해 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리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유동적인
시각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고된 인간살이를 조금은 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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